지역의 시계가 멈췄다. 퇴직자가 발생했지만 채용을 할 수 없다. 당장 회사의 모습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회사의 미래 먹거리를 고민할 이유가 사라졌다. 당장 이 회사가 존재할지 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박성제 사장의 두 달여에 걸친 지역사 순회 설명회와 서울 정책설명회는 더 크고 강한 하나의 MBC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아닌 그래서 내일 우리는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과 불안감을 키워 놓았다.
박성제 사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노동조합의 역할을 주문했다. 그러나 대체 구성원들의 의견을 어떻게 모을 것인가. 지분 확보를 위해 유보금을 한껏 덜어낸 뒤 ONE-MBC 계획이 멈춘다면 어떻게 되느냐는 구성원의 질문에 노동조합은 답할 수 없다. 메가MBC가 끊임없는 논의와 실패를 반복해온 광역화와 대체 무엇이 어떻게 다른 것이냐는 일차원적인 의문에 대해서도 아무런 이야기를 해줄 수가 없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고 중단 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박성제 사장의 호언장담을 뒷받침해줄 그 무언가가 지금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어떤 맹수와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낯선 허허벌판에서 최소한의 나침반과 지도도 없이 알아서 길을 찾아내보라는 것은 자율이 아니다.
본인의 선의와 능력, 의지를 믿어달라는 ONE-MBC 계획의 유일한 실행 근거조차 이제는 의심받고 있다. 지역사를 돌며 서울 구성원들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고 강조한 박성제 사장의 장담은 벌써부터 삐걱대고 있고, 구성원들의 의지를 모아보려던 한 지역사의 발 빠른 행보는 박성제 사장의 모호한 설명으로 인한 신뢰문제로 중단되어 버렸다. MBC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큰 변화를 준비하며 최소한의 계획조차 없이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는 모습은 신뢰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대체 어떤 계획과 비전을 가지고 진행해 나갈 것이냐는 구성원들의 질문에 “내가 지금 어떻게 큐시트를 내놓을 수 있는가? 여러분이 동의하면 같이 만들어나가는 것이다.”라며 즉답을 에둘러 피해가는 미덥지 못한 모습은 혁신을 도모하는 리더로서 지역구성원들의 신뢰를 얻기에 부족하다.
시민들의 촛불혁명을 통해 압도적인 지지율로 탄생한 현 정부에 시민들이 왜 등을 돌리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라. 기회는 평등할 것이며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말이 허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강고한 의지로 집값을 잡겠다고 했지만 정 반대의 결과가 도출되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의지와 신뢰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결과를 도출해낼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계획 없이 이뤄낼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를 외면한 현실을 우리는 매일 마주하고 있다.
지난 겨울. 위기에 처한 16개 지역사를 지역 여건에 맞춰 가장 잘 이끌 수 있는 새로운 리더를 찾기 위해서 경영진과 노동조합은 머리를 맞댔다. 많은 이견이 존재했지만 노동조합은 믿고 양보했다. 이번만큼은 정말 능력 위주로 인선을 할 것이라는, 구성원을 설득할 수 있고 지역사의 경쟁력을 창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지역사 사장이 될 수 없다는 박성제 사장의 말에 대한 신뢰였다. 하지만 믿음은 채 반 년도 되기 전에 무너졌다. 그렇게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신임 사장들의 그 능력은 제대로 빛을 발할 최소한의 기회조차 받지 못한 채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지역의 경영진은 박성제 사장이 사실상 논의의 전권을 부여한 노동조합의 행보만 주시하고 있다. 이 논의가 언제쯤 어떤 식으로 마무리되느냐에 따라 회사와 본인의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ONE-MBC 논의가 지역사에 가져온 명암은 그렇게 갈수록 더 뚜렷해지고 있다.
조만간 메가MBC TF가 가동된다고 한다. 서로 다른 연차와 직종, 지역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모인 자리에서도 아무런 계획 없이 신뢰만 강조할 것이라면 그만한 시간과 비용을 들일 이유가 없다. 별다른 소득 없이 시간과 인력, 재원만 낭비하고 말 것이다. 구체적인 계획과 의지가 겸비되지 않는다면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신뢰가 무너진다면 ONE-MBC는 한 발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아직 시간은 있다. 자율적인 토론과 합의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바탕을 준비하기를 기대한다. 지역사의 시계는 다시 흘러가야 한다.
2021년 7월 15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