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眞實).
기자는 그 앞에 멈칫한다. 고개를 바싹 치켜들어 바라본다. 어떻게 오를 것인가? 기자에게 진실은 산의 정상, 도착점이다. 행여 감당하기 힘든 고도라 해도 ‘사실’이라는 한발 한발을 내디뎌 다가간다. 진실 추구가 기자의 존재 이유라 배웠고 그 배움을 실천하기 위해 최소한 흉내라도 내며 기자들은 스스로 위안 삼는다.
한국의 기자 사회는 세월호 참사 앞에 무릎 꿇고 집단 반성을 했다. 진실은커녕 사실조차 제대로 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기자 집단에겐 치욕스러운 흉터로 남아있다.
기자 조의명이 쓴 ‘세월호, 1073일 만의 인양’ 기사가 물에 잠긴 진실을 건져내진 못했다. 다만 기자로서, 한국 사회 일원으로서 “세월호 인양이 그 ‘진실’을 전해주길 바란다”는 자기반성을 기사로 고백했다.
그런데 이걸 지우라고 했다. 대신 “정치적 갈등을 끝내야 한다”로 고치라 했다. 시사매거진 2580을 책임지고 있다는 국장이 말이다. 국장이라는 직함 이전에 그도 기자 군(群)의 한 명일 것이다.
묻는다. 세월호가 정치적 갈등 끝내려고 인양됐는가? 그저 물에 빠진 6천8백 톤짜리 여객선 건져올리면 정치적 갈등이 끝날 거라는 ‘정치적 계산’ 때문에 3년을 기다렸는가? 뭐가 진실인 지 밝혀져야 정치적 갈등도 끝난다는 당연지사를 외면하자는 것인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밝혀졌는가? ‘진실’이 두려운가? 아니면 이 단어가 그냥 싫은 것인가?
조의명 기자는 납득되지 않는 국장의 지시에 저항했을 뿐이다. 다른 건 다 수용한다 쳐도 ‘진실’이라는 단어만큼은 기자의 양심으로 지키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경영진은 끝내 ‘지시 불이행’이라는 이유로 조의명 기자를 징계했다. 기가 차서 넘칠 노릇이다. 대체 누가 누구를 징계하는가? ‘진실’을 밝히진 못했지만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고 말한 기자를 징계할 것인가? 아니면 ‘진실’이란 단어조차도 쓰지 못하게 한 보도 책임자를 징계할 것인가?
주목되는 지점은 징계 결과이다. 제작 거부, 방송 제작 가이드라인 위반, 직장 질서 문란 등 온갖 징계 사유를 달아 인사위원회를 열고서는 ‘주의’라는 최하위 징계를 결정했다. 중범죄를 다루는 합의 재판부에 사건을 배당해놓고 과태료를 선고한 격이다. 이는 징계는 해야겠는데 합당한 징계 사유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자백이다. 그렇다면 징계의 대상은 정당한 저항자가 아니라 부당한 지시자임에 틀림없다.
김희웅, 이호찬 기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인터뷰 조작’이라는 의혹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선 거다. 경영진이 ‘자격도 없는 이들이 음성 파일을 청취했다’는 처절하게 궁색한 이유를 들어 징계할 것이면 ‘인터뷰 조작 의혹 제기’의 진실을 밝혀낸다고 실시한 감사가 성문 분석상 동일인이라는 결과를 묵살하고 정작 인터뷰 당사자의 직업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마무리한, 이 찝찝하고 수상쩍은 결론에 대해선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인사위원회는 징계 결과를 통보하면서 ‘근거 없는 의혹 제기’ ‘직원의 인격 손상’ ‘직장 질서를 어지럽힌 행위’라고 적시했다. 경영진은 이 징계 사유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인터뷰 조작’ 의혹에 대한 감사는 언제든 다시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그 진실이 밝혀졌을 때 ‘인터뷰 조작 의혹 제기’가 과연 근거가 없는지, 정작 인격이 손상된 이는 누구인지, 직장 질서가 어지럽혀진 것인지 아니면 취재 윤리가 훼손된 것인지 다시 따져 물을 것이다.
MBC 기자협회는 선언한다. ‘진실 추구’라는 기자 본능을 징계하겠다는 발상을 넘어 실제로 눈앞에 펼쳐 보인 경영진이야말로 징계 대상이다. 한국 사회에 상식과 정의가 서서히 차가면서 누군가는 부력으로 떠오를 것이고 누군가는 중력에 묶일 것이다. 경영진은 오늘 또, 제 힘으로 감당하기 힘든 과오의 쇳덩이를 스스로 짊어지었다.
2017년 5월 22일
MBC 기자협회
[출처] [성명] 누가 ‘진실’을 징계했는가?|작성자 MBC 기자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