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쓰기 보도의 참사가 일어났다. 그렇게 받아쓰기만 하더니 지울 수 없는 뉴스 자해를 저지르고 말았다. 지난 5월 5일, 대선 투표일을 나흘 앞두고 MBC 뉴스데스크가 보도한 당시 문재인 후보 아들 준용씨 특혜 채용 관련 ‘아들 취업에 적극 개입? 의혹 재점화’란 꼭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국민의당은 어제 “특혜채용 제보 녹취는 조작”이라 자백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5월 5일 당일, 국민의당이 공개한 이 조작 녹취를 그대로 받아 뉴스에 내보낸 지상파 뉴스는 MBC 뉴스데스크가 유일하다. 그리고 6일, 7일, 그리고 대선 전날 8일까지 끈질기게 이 녹취를 뉴스 소재로 사용해 의혹에 살을 찌웠다.
‘검증’이라는 게 있다. 대선이라는 민주주의 최대 정치 이벤트에서 후보에 대한 검증 보도는 유권자의 선택을 가를 수 있기에, 가장 치열하게 취재하고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MBC 뉴스는 그러지 않았다. 검증취재 기능이 없었기에 불가능한 측면도 있었겠지만 MBC 뉴스는 그러지 않았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을 거다. ‘의혹만 키우면 되니까’ 라고 생각했을 거다.
국민의당이 이 정도 사안의 녹취를 공개했는데 녹취를 그리도 좋아하는 다른 지상파 방송은 왜 내보내지 않았을까. KBS가 5월 6일 이 사안을 보도했지만 문제의 녹취를 방송에 직접 틀지는 않았다. MBC가 단독 입수해서 그런 건 물론 아니다. 특정 정당이 제공한 녹취를 그대로 받아 방송에 내는 게 언론 역할이 아니라 그 녹취가 과연 믿을 만한 지 검증하는 게 언론의 최소 역할이라는 걸 그들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정 정당이 제공한 녹취의 진실성을 검증하지 못할 바에야 녹취를 방송에 그대로 틀지 않거나 아예 뉴스화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반면 MBC 뉴스 생산자들은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가뜩이나 문재인 후보 흠집내기에 혈안이 돼있던 MBC로서는 국민의당이 공개한 녹취를 듣고 ‘이거야 말로 우리가 원하던 것’이라며 한 순간의 멈칫도 없이 보도를 결정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꼭지가 나갔을 때 성취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 동안 우리가 열심히 받아썼던 문준용 특혜 취업 의혹이 사실이구나’라고 자위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당이 자당의 이득에 눈이 멀어 정치 공세용으로 제공했던 미끼는 결국 범죄로 만들어진 조작물로 민낯을 드러냈고 MBC는 이미 그걸 덥썩 물어버렸다. 국민의당의 조작물이 뉴스에 등장한 순간, 당신들도 공범자가 된 것이다.
김장겸 사장이 자신의 입으로 쓰기 위해 채용한 이들, 그 쓰임새대로 충실히 이용당하는 용병 사원들, 그리고 김장겸 사장을 정점으로 스크럼을 짠 보도부문 수뇌부들, 당신들은 기자가 아니다. 누군가 말을 하면 그걸 그대로 받아치고 받아친 걸 기사 형태의 글로 작성하고 그 글을 마이크에 대고 읽고 그 위에 영상을 붙이고 그게 뉴스 프로그램으로 나간다고 해서 생산자가 기자가 되고 그 영상물이 뉴스가 되는 건 아니다. 그건 글을 깨우치고 말을 할 줄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공영방송 기자라면 그 글과 말이 과연 뉴스 전파라는 공공재를 통해 내보낼 만한 가치가 있고 진실성이 어느 정도 포함돼 있는 지 따져야 한다. 그걸 생략하는 건 기자가 아니라 뉴스 장사꾼이다. 그리고 그 장사는 시청자를 위한 공익 행위가 아니라 특정 집단, 특정인을 위한 위험천만한 배임 행위다.
제발 떠나라. 더럽힐 대로 더럽힌 MBC뉴스 제작 현장에서 떠나라. 비단 이 꼭지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님을 당신들도 알 거다. 지난 대선보도 기간 MBC 정치부 기사는 선거방송심의위원회로부터 어김없이 법정 제재를 받았다. 회사의 명예를 훼손시켰다. 그런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자신들이 쳐놓은 성벽 안에서 이젠 ‘백악관 뉴스’ ‘사드 뉴스’에 골몰하고 있다.
MBC 기자협회와 영상기자회, 전국 MBC 기자회 등 4백여 명의 기자 구성원들은 수십 차례의 성명을 통해 김장겸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 MBC 뉴스의 향수를 지우지 않은 시청자들도 조금씩 우리의 외침에 귀를 열어주고 있다. 그런데 경영진은 사장 퇴진을 외치는 목소리에 또 그 알량한 인사권을 앞세워 경위서를 요구하고, 용병 사원을 감싸기 위해 쫓아내기 인사로 눈엣가시 같은 구성원을 여전히 밀어내고 있다. 궁지에 몰린 이가 눈 감고 칼을 휘두르는 애처로운 장면이 떠오른다.
이제 그만하면 됐다. 떠나라!
2017년 6월 27일 MBC 기자협회
[출처] MBC기자협회 성명]떠나라, 당신들은 기자가 아니다|작성자 MBC 기자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