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의 뜻에 명백히 반하는 보도개입 즉시 중단하라
‘시사 없는‘ mbc <시사매거진 2580>에 ‘세상을 보는 따스한 눈‘을 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궁금해서 전화드려요. 왜 2580은 백남기 농민 관련 보도 안 해주시나요?’
우리는 이런 전화에 ‘죄송하다, 우리도 하고 싶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는 이것저것 해보자고 아이템 제안서를 내밀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킬’이었고 ‘말해 뭐해’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마음 한켠에 자리잡았다. 프로그램의 몰락은 점심시간에 밥을 못 먹을 정도로 불티나게 울리던 제보전화통이 조용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는 겨우 2년 동안 mbc에 머물 수 있는 파견직 노동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의 공공성, 공익성 회복을 위해 우리의 입장을 밝히기로 했다. 취재의 목적과 의의가 난도질당하고 부당하게 편집되는 제작 과정에서 우리가 느낀 허탈감과 분노는 극에 달했다. 지금까지 항의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우리 작가진도 시사제작국장이 저지르고 있는 만행에 대해 모두 알고 있으며 한 목소리로 비판하고 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무엇이 부끄러운 것인지 알지 못하는 이들과 더 이상 방송 제작을 이어갈 수 없다. 우리 작가진은 시사제작국 기자 및 PD들의 제작 중단을 적극 지지함과 더불어 조창호 시사제작국장의 퇴진을 강력히 요구한다.
지난 3월 26일 <세월호 3년만의 인양> 을 방송한 뒤 2580은 말 그대로 폭파되었다. ‘진실’이라는 단어를 기사에서 삭제하고 팽목항에서 찍어온 기자의 스탠드업을 다시 찍으라는 무리한 요구에 2580팀은 응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차례 인사 칼바람이 불었다. 취재기자 여럿과 카메라기자, 심지어 데스크와 부서장까지 전부 삽시간에, 믿을 수 없겠지만 일사천리로 바뀌었다. 2580의 23년 역사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우리는 여러 차례 반문해보았다. ‘과연 우리가 하는 방송이 공익적이고 합리적인가? 아이템 제작 과정은 투명한가? 이 시스템은 바람직한 것인가?’ 방송의 내용이 검열당하는 일은 일상이었으며 제작 시스템 또한 붕괴되었다. 한나절, 심지어는 꼬박 하루 이상 걸리는 데스킹을 기다리느라 편집은 시작도 하지 못하기 일쑤였고, 편집 완본이 나온 이후 녹화를 위해 스튜디오에 들어가고 나서도 음악과 CG, 화면구성을 바꾸는 기이한 일들이 반복되었다.
결국 3일 오전 11시를 기점으로 mbc 시사제작국 PD와 기자들은 경영진의 보도개입에 반대하는 취지로 제작중단에 돌입했다. 그러자 제작중단에 참여하지 않은 취재기자 1명당 작가 2명이 붙어서 일을 하라는 부당업무 지시가 작가들에게 문자로 전달되었다. 결국 같은 날 문화방송의 하청 소속인 2580 취재작가 겸 조연출 9명은 회의를 거쳐 제작중단에 동참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회의가 끝난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2580과 고락을 함께했던 제작PD가 타부서로 발령되었다. 역시 일사천리다. 고참 작가들은 파견회사 측의 전화를 받았다. 문화방송 인사 부서에서 연락이 왔었다며 ‘지금 그럼 일을 안 하시고 계시는 거냐’, ‘제작 중단에 동참한 것은 자의냐, 분위기상 그렇게 된 것이냐’ 등을 상세히 물었다. 이에 우리는 팀 작가 9명이 각자의 소신과 신념에 따라서 전원 자의로 제작중단에 동참했다는 의견을 충분히 전달하였다.
우리는 파리 목숨이다. 그렇지만 하늘 아래 부끄러움 없이 우리 전부를 회사에서 내보내고 경영진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사람을 뽑는다 하더라도 끝까지 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잘못이 직무유기나 근무태만 등이 아닌 이상 사용자의 부당해고에 가만히 있지 않겠다. 사측은 보도개입을 지속하며 정당한 취재활동을 징계와 해고 및 좌천으로 규제하고 위축시키려 하는 것이 ‘기본과 원칙이 있는’ 방송 제작에 대한 업무방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시사 없는 시사매거진은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한다. 처참한 시청률과 mbc에 대한 국민들의 냉대가 그것을 증명해준다. 2580 작가진은 언론장악 이후 수년간 왜곡보도와 편파보도로 너덜너덜해진 mbc를 국민의 품에 안겨줄 것을 요구한다. 이제 프로그램의 주권을 제작자와 시청자들에게 돌려달라. 방송을 여론형성과 정치적 통제의 도구로 취급하지 말아 달라. 또한 비제작 부서로 내몰린 시사제작2부 기자, PD선배들에 대한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바다. 우리는 양심과 신념에 어긋나는 방송을 제작하지 않을 것이며, 짜깁기나 편향, 축소보도가 지속되도록 방조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 옳은가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옳은지를 누가 정하는 가다. 판단은 시청자들의 몫이다.
2017년 8월 7일
전. 현 2580 작가
강여울 기진희 김다솜 김서연 김아름 김인희 김지인 김지현
김태연 박솔지 원지은 유상은 정다인 최신애 표수연 한예솔 홍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