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지긋지긋한 시절이다, 그렇죠?
어떻게 올라온 자리인데, 어떻게 된 사장인데 말이에요. 직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김장겸은 물러나라!’며 회사 건물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치고요, 사내 게시판에는 온갖 협회와 기수와 사번과 이름들이 또 ‘김장겸은 물러나라!’고 도배를 하고 말이에요. 사장은 사장인데 다들 떠나라 떠나라 하는 요즘, 참 지긋지긋하시겠다 싶어요.
2006년 12월 18일을 기억합니다. ‘06 사번 사령장 수여식.’ 여의도 사옥 10층에 모인 우리는 더할 수 없는 자부심과 설렘 속에서 처음 인사를 나눴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방송사에 들어왔다는 뿌듯함과 이곳에서 펼칠 나의 꿈을 그리며 절로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만 10년이 지나고 그 날을 돌아보니 참 지긋지긋하다 싶네요. 2011년부터 따지자면 햇수로만 벌써 7년. 우리는 그동안 더 끔찍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느새 MBC를 다닌 기간 보다 ‘엠빙신’을 다닌 시간이 더 길어졌습니다.
그 몇 년 사이, 방송인을 꿈꿨지만 망가져가는 MBC에서 어느덧 생활인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 우리들을 발견합니다. 입사 후 원 없이 일하고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던 그 반짝이던 3~4년의 시간이 MBC의 진짜 모습이라는 걸 알기에 바보처럼 버텨봅니다. 한 후배의 말처럼 ‘그 상상속의 동물’과 같은 시간을 본 마지막 증인과도 같은 저희니까요.
한 기자 동기는 역사상 최장이라는 9개월의 징계를 받고 경기도 어디에 있는 조그만 사무실에서 젊음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떤 아나운서 동기는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예고도 없이 잘리고 다른 부서에 쫓겨나 있습니다. 어떤 피디 동기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관련 없는 부서에서 몇 년을 떠돌아야했습니다. 인사발령 게시판에 수시로 나붙는 방들 속에서 동기들의 이름 옆에 적혀진 징계 내역을 볼 때마다 우리는 참담함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 즈음부터 김장겸 사장께는 참 좋은 시절이었던 모양입니다. 정치부장,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그리고 사장으로 이어지는 2년 간격의 승진과 영전. 행복하셨겠어요. 동료 선 후배들이 회사에서 잘리고 일터에서 밀려나고 광장에서 욕먹고 인터넷에서 조롱당하고 시청률에서죽을 쑤고 있었지만, 그래도 당신은 행복하셨겠지요. 모두가 헐떡이던 세월에 말이지요. 우리가 우리의 MBC를 도둑맞은 그 때 말입니다.
이제 그만 이 지긋지긋한 시절을 끝내시지요. 당신이 통과해온 승승장구의 세월이자 실은 가장 무참한 폭력과 학대로 MBC의 피와 살점이 뜯겨나가던 세월을 이젠 그만 끝내자는 말입니다. 김장겸이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MBC의 몰락을 멈추자 이 말입니다.
나가십시오.
참으로 지긋지긋한 시절은 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참으로 빛났던 그 시절을 다시 살고 싶습니다.
2006년 12월 18일 입사자 전원(36명)
강성아, 강승호, 강 철, 김경민, 김나형, 김명훈, 김상민, 김선철, 김영혜, 김희원, 박선영,
박주린, 박주일, 서정문, 손정은, 송경진, 송원호, 송효지, 오해정, 이미영, 이용성, 이용주,
이지선, 이지현, 이창호, 이태상, 임소정, 임채원, 장준호, 전승훈, 정구영, 정길상, 최우식,
최정규, 허일후, 현기택, 황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