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야당 대표가 예정돼 있던 TV 생방송 토론을 방송 직전에 일방적으로 취소해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어젯밤(30일) 9시50분 쯤 MBC ‘100분토론’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제작진에 최종 통보했다. 생방송을 단 40여 분 앞둔 시점이었다. 이 대표는 심지어 자신이 방송 펑크를 내면서 생기게 될 방송시간 공백에 대해 ‘동물의 왕국’이나 틀면 된다고 답했다. 거대 공당의 대표가 수백만 시청자와의 약속을 얼마나 하찮게 여기고 있는지 그 저열한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100분토론’ 제작진이 이준석 대표를 섭외한 것은 지난 토요일 저녁이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여야 대표가 직접 시청자들 앞에 나와 찬반 토론을 벌일 예정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먼저 출연을 확정했고, 이준석 대표도 직접 제작진에게 전화를 걸어 흔쾌히 출연을 수락했다. 이 대표는 일요일 아침 자신의 페이스북에 “월요일에 언론중재법 관련해 백분토론에 나간다”며 직접 생방송 출연 공지까지 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제작진으로서는 이 대표의 출연 불발을 사전에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문제의 상황은 ‘100분토론’ 생방송 당일에 벌어졌다. 이준석 대표는 토론을 앞둔 어제 오후, 국회에서 진행된 긴급현안보고에서 갑자기 ‘민주당이 언론중재법을 본회의에 상정할 경우 TV토론을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시청자와의 약속인 생방송 TV토론을 여당 압박을 위한 협상 카드로 이용하겠다는 불순한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이 대표는 실제 국회 출입 기자들에게 “(협상) 결과 나오는 것 보고 토론 불발로 판을 키워야지.”라고 말해 공영방송 토론프로그램을 저열한 정치적 도구와 협상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었음을 자인했다. 이 대표는 또 ‘그럼 MBC는 뭘 내보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동물의 왕국.”이라고 답하며 토론을 기다렸을 시청자들을 대놓고 무시하고 모독했다. 이 과정에서 제작진에게는 어떠한 연락도 없었다.
언론중재법은 결국 상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상정하면 TV토론 취소’라고 했던 이준석 대표는 그 이후에도 제작진의 출연 요청을 거절했다. 전국민 앞에서 자신이 내건 전제 조건을 스스로 다시 뒤집으면서까지 끝내 ‘100분토론’을 결방시킨 것이다. 이는 처음부터 의도된 출연 불발과 프로그램 결방이 아니었는지까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이 대표는 제작진은 물론 국민과의 약속을 두 번이나 저버렸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공영방송을 농락하고 시청자를 우습게 본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를 규탄한다. 이 대표는 자신의 저열한 ‘정치질’에 생방송 TV토론과 국민과의 약속을 악용했다. ‘젊은 보수’를 내세우며 기득권 정치인들의 구태와 구습에 대한 비판을 디딤돌 삼아 지금의 당대표 자리까지 올라온 자가 이제는 과거 자신이 했던 발언들이 얼마나 가볍고 얄팍한 레토릭에 불과했는지를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이준석 대표가 보인 오만한 행태는 방송사 제작진을 상대로 한 ‘갑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준석 대표의 머릿속에는 정치 공학적 사고 외에는 국민도, 신의도, 최소한의 예의조차도 들어있지 않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준석 대표는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잘못을 깨닫고 ‘100분토론’을 기다렸을 시청자들 앞에 진심을 담아 사과하라.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자에게 당대표라는 자리는 과분하고 버거운 자리일 뿐이다.
2021년 8월 31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