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사번 성명] 우리는 당신들이 지난 9년 간 한 일을 알고 있다

“원래 MBC의 모습, 망가지기 전의 진짜 MBC.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듣기는 했다.
그건 내게 유니콘 같은 것이다.
있다고, 분명히 존재했다고, 전설처럼 전해 듣긴 했지만 본 적은 없다.” / 장수연, 라디오PD

태어나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냐는 물음에 ‘태어날 때’라고 대답하는 이가 있다면 아마도 참 불행한 사람일 것이다. 회사에서의 삶만을 놓고 본다면 우리가 그렇다.
우리는 MBC가 무너지기 시작하던 2008년, MBC에 입사했다.
연수원에서 신입사원 연수를 받을 때 ‘미디어법 파업’이 있었다. 90년대 이후 근 10년 만의 일이라고 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선배들은 미안하다며, 금방 끝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한창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던 우리도 사실 별로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았다. 농담처럼 갓 입사한 우리의 파업 경력이, 입사한 지 십몇 년 된 선배들과 같아졌다며 웃었다. 동참하는 차원에서 조별활동 구호를 ‘공영사수’로 제안한 동기들도 있었다.
“당시 우리들은 전혀 심각하지 않게 한목소리로 ‘공영사수’ 구호를 아주 즐겁게 외쳤다. 내가 들어온 회사가 그냥 일반적인 ‘회사’가 아니구나. 우리는 많이 어리바리했고, 약간 설렜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순간은, 이후 벌어질 슬픈 미래에 대한 복선이었던 것 같다.” / 이현석, 방송경영

돌이켜 보면 그때 우리는 ‘사수’라는 말이 ‘목숨을 걸고 지킨다’는 뜻이라는 걸 간과하고 지나갔었던 것 같다. 공정한 방송을, 국민을 위한 언론의 역할이라는 게 얼마나 절박하고 소중한 것인지 차츰 체감하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입바른 소리를 하던 뉴스데스크 메인 앵커가 강제로 끌어내려지면서, 수습 딱지를 떼기도 전에 뉴스 파행을 먼저 경험했다. 선배들이 뉴스 제작을 거부하면서 신입 기자 몇몇은 멋모르고 처음 마이크를 잡기도 했다. 우리의 처음은 그렇게 어수선하고 불안했다.
싸움은 끊임없이 벌어졌다. 이듬해 “청와대에서 조인트를 맞고 ‘좌파 척결’ 특명을 받았다”는 사장이 취임하면서 39일 동안 파업을 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선배들은 이대로 회사가 망가지는 것보다 회사 내에서 싸우는 게 낫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그 유명한 솔로몬의 판결 얘기처럼, 막장 싸움이 벌어지면 보통은 더 사랑하는 쪽이 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마음을 헤아려주고 우리의 손을 들어줄 솔로몬 같은 중재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2012년, 마봉춘이라는 애칭 대신 ‘엠병신’이라는 조롱 섞인 야유를 처음 들었을 무렵, 우리는 겨울부터 여름까지, 반년 가까운 날을 파업으로 보냈다.
“2012년 8월 16일, 결혼하고 채 일 년이 되지 않아 아기가 세상에 나왔다.
아내는 결혼 후 7개월 동안 월급을 못 가져다줬는데 싫은 소리 한 번을 안 했다.
39일 파업 때처럼 수염만 기르지 말라고 했다. 길렀으면 어땠을까?
파업이 끝나고 한 달 뒤 태어난 우리 아기는 올해로 6살이다.
아직도 회사에 돌아오지 못한 분들이 계신다.”
/ 홍민구, 스포츠PD

역대 가장 길고 치열했던 파업은, 그만큼 깊고 참혹한 상처를 남겼다. 본보기로 10명이 해고되고 200명이 징계를 받았다. 회사 측은 파업에 참가한 직원 조합을 상대로 195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수많은 직원들에게 기존 업무와 무관한 한직으로의 전출 명령이 떨어졌다. 입사한 지 몇 해 안 됐던 우리도 그 칼부림판에서 열외 대상은 아니었다.  입사 동기 중 유일한 시사교양PD였던 민병선은 노동 탄압을 고발하는 방송 아이템이 불방되자 저항했다가 정직 징계를 받고 스케이트장 관리직으로 돌연 업무가 변경된 이후 결국 회사를 떠났다. 경영진의 비리와 해사행위의 실체를 파고들던 김민욱, 이남호 두 취재기자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원래 자리인 보도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파업 이후 쫓기고 쫓겨 경영 파트로 간 민욱과 오랜만에 점심을 먹었다. 기자 생활 보다 다른 일을 한 시간이 더 길어졌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찌른다.” / 공윤선, 취재기자

공교롭게도 표적이 된 세 사람은 누구나 인정하는, 동기들 가운데 가장 유능한 이들이었다. 비단 동기들 뿐 아니라 다른 선배들도 마찬가지였다. 도적이 몽둥이를 들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했다. 대체 불가능한 유능함, 사내외에서의 영향력, 자신들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창의성을 경영진은 ‘위협’으로 파악했다. 입사 후 9년 동안 이 위협 요소에 해당하는 수많은 선배와 동료들이 회사를 떠나거나 부당한 모욕을 감내해야 했다. MBC의 가장 소중한 자산, 수십 년 간 쌓아온 맨파워가 불과 몇 년 사이에 거짓말처럼 사라져 갔다. 떠난 빈자리가 늘어날 때마다, 남은 이들의 좌절은 커져갔다.
“처음에는 ‘저런 ‘얘기되는 기자’를 설마 빼겠어?’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얘기되는 기자일수록 먼저 보도국에서 책상을 뺐다.
아, 저쪽은 뉴스 경쟁력은 안중에도 없구나. 이게 지금 공평한 게임이 아니구나…
그제야 알게 됐다.” / 임경아, 취재기자

회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능력은 더 이상 창의성이나 도덕성, 판단력이 아니라 고분고분한 순종적 태도였다. 두 명의 기자가 마이크를 빼앗긴 얼마 뒤, 파업 도중 알 수 없는 변명의 말을 남기고 동료들을 떠난 08사번 입사자 배현진 아나운서는 ‘국가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누군가 속삭이는 듯했다. 어떤 영화에서 제국의 황제가 했던 대사처럼 – 무릎을 꿇어라. 그리하면 너에게 왕좌를 주리라.
한줌 존엄성을 지키기를 선택한 대부분의 우리는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저항으로 싸웠고 그 때마다 선택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때론 보이는 징계로, 때로는 보이지 않는 억압으로. 시간은 생각했던 것보다 길고 무겁게 우리를 짓눌렀다.
“촛불집회 현장에서 MBC 로고가 보이면 옷이나 카메라에 침을 뱉는 사람, 어디서 날아온지도 모를 손이 뒷통수를 때리거나, 발길질을 하거나, ‘멍멍 하고 짖어봐 이 18놈들아’…
처음에는 가슴이 벌렁거려서 취재 현장을 가기가 무서웠던 적도 있었지만 나중엔 익숙해지다가… 그 다음엔 결국 ‘내가 이 곳에서 지금 월급 받고 사는 것만으로도 이미 어느 정도 부역을 하는구나…'” / 박주영, 카메라기자

내일을 기약하며 ‘질기고 독하게’ 살아남자고 다짐했지만, MBC를 정상화시키려면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고, 우리까지 던지고 나가면 쫓겨난 사람들은 누가 지키냐고 서로의 마음을 다잡았지만 버티는 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었다.
“최장기 파업을 도망치듯 어영부영 접고 올라온 뒤에 나의 직장 생활은 ‘한숨’이었다. 짐짓 괜찮은냥 생활하고 웃었지만 대화와 대화 사이 작은 틈만 생기면 무의식 중에 후우 한숨이 나왔는데, 그럴 때마다 같이 얘기 중이던 동료도 약속이나 한 듯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 석정은, 방송기술
‘좋았던 시절’을 서로 얘기하는 게 어쩌면 유일한 위안. 하지만 우리 08년 사번에게 좋았던 시절이란 얼마큼일까, 몇 달? 며칠?
“우리를 미소 짓게 만드는 건  8, 9년 전 그 시절 그 기억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조차 혹시 상처가 될까 봐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 서혜연, 취재기자

우리는 이제, 차마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 없어 다시 일어서려 한다. 세상이 바뀌니까 이제야? 냉소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우리가 정상화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에게 남은 기회는 더 이상 없을 것임을 우리는 안다.
“이미 MBC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은 지났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하나씩 하나씩 상식을 찾아가고 있는 사회 분위기가 우리의 골든타임을 다시 종용하고 있는 느낌이다.”
/ 허항, 예능PD

입사 이후 한 번도 좋은 날이 없이 싸우고, 패배하고, ‘조리돌림’당해 온 불운한 세대지만, 우리는 직군을 불문하고 MBC가 MBC였던 시절 이 회사에 들어와 나름의 재능과 잠재력을 인정받았다는 자부심을 품고 있다. 많은 이들은 말한다. 앞으로 경영진이 바뀌고 정상화를 꾀하더라도, MBC가 예전의 전성기로 돌아가기엔 힘들 거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 힘든 길을 걷기 위해 지금까지 버텨 왔다. 빛나던 시절이 저물어갈 무렵 첫 발을 디뎠던 우리는 어느새 조직의 허리 역할을 감당해야 할 10년 차를 앞두고 있다.
지금의 동료들 그리고 미래의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MBC를 예전 모습으로 돌려놔야 한다는 의무는 우리의 몫이 되었다.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원래 그랬다.
내가 처음 경험한 MBC는 할 말은 했고, 할 일은 알아서 했으며, 해도 안 되면 다시 하는 곳이었다.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그 DNA가, 오만가지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그냥’ 1등인, MBC를 지탱해주는 힘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그 DNA를 물려받은 마지막 세대다. 소멸의 세월을 살아온 우리에게 남겨진 몫은 이를 복원하는 일이다.”
/ 홍석우, 편성PD

우리가 얼마나 끊임없이 싸워왔는지를 구구절절 변명할 생각은 없다.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싸우는 게 최선이라는 걸 우리는 안다. 우리의 명분과 정당성은 우리가 해 왔던 일 뿐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해 나갈 일에서 쟁취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처음 입사할 때 즐겁게 외쳤던 ‘공영 사수’의 소중함을 우리는 피를 흘려가며 충분히 배웠다.
“바로잡아야 한다. 제자리로 되돌려놔야 한다. 정작 회사를 위해 몸을 던지고 취재했던 이가 누구인지 기억해야 한다. 누가 이 회사를 망가뜨리고 누가 이들의 기자로서의 인생을 무참하게 짓밟았는지도 기억해야 한다.
세상이 기억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끝까지 증언할 것이다.”
/ 이성재, 카메라기자

우리는 MBC라는 이름이 좋았고, 전파를 타고 세상을 채워 온 프로그램 하나 하나를 사랑했고, 우리가 기억하는 이 방송국엔 본받고 싶고, 함께 일해보고 싶은 멋진 사람들이 가득 있었다. 이 ‘꿈의 공장’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그 떨림을 여전히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는 그래서 분명하다. 막연한 이상이 아니라. 우리가 디뎠던 고향을 다시 찾겠다는 것. 방송을 사유화하고, 권력의 주구로 만든 주범들을 끌어내리는 것,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해 보겠다는 것이다. 어렵지만, 마냥 어렵지만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옳은 일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예의 바르고, 애사심이 있으며, 노동조합이나 어느 특정세력에 의해 휘둘리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일에 몰입하고 싶을 뿐이다. 동료들의 부당한 처우와 아픔을 외면할 수 없을 뿐이다. MBC인의 자긍심을 잃고 싶지 않을 뿐이다.”
/ 강희구, 라디오PD

너희가 무슨 자격으로 나서느냐고, 지금도 그저 가만히 있으라고 억누르려는 이들이 있다면 기꺼이 답하겠다.
우리는 한 줌 그대들의 그릇된 권력욕과 야심으로 인해
젊은 방송인로서의 미래와 희망을 송두리째 빼앗겨 온 피해자인 동시에,
입사 직후부터 지금까지 한 순간도 빠짐 없이,
그대들의 모든 패악과 간계를 오롯이 목격한 증인이다.

 

2017.6.18
 
강경호 강   인 강희구 공윤선 김민욱 박주영 서동환 서혜연 석정은 손일송 양효걸 오누리 오미경 우수호
이남호 이상헌 이성배 이성재 이재석 이현석 임경아 임   찬 장수연 조의명 허   항 홍민구 홍석우 홍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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