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방송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직회부 건에 대해 권한쟁의심판과 효력정지가처분신청을 냈다. 방송법 직회부는 국회법 86조 3항에 따라 이루어졌는데, 이 조항은 법제사법위원회가 법률안에 대한 심사를 이유 없이 60일 이내에 마치지 않았을 때 해당 소관위가 본회의 부의 요구를 의결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본회의 직회부 의결 절차가 해당 조항의 ‘이유 없이’ 부분을 위배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가 웃을 일이다. 법사위는 법안의 내용을 심도있게 다루는 곳이 아니라 체계·자구심사만을 맡는 곳이다. ‘체계 심사’는 법률 간의 법 충돌 문제를, ‘자구 심사’는 법안의 맞춤법과 문구의 정합성을 살피는 일이다. 그러나 법사위원장 자리를 차지한 집권여당은 방송법에 체계 및 자구 관련 쟁점이 없는데도 이를 법사위 제 2소위에 일방적으로 회부한다고 알렸다. 타상임위의 법안을 다루는 제 2소위는 거의 개최 되지 않아 ‘법안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곳이다. 방송법 개정안의 내용에 대해서 다툴 수 없으니 있지도 않은 형식 문제를 들어 ‘이유 없이’ 시간을 끌어왔던 셈이다. 국회법 86조 3항은 이러한 고의 지연 폐단을 없애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 방송법 개정안 본회의 직회부는 절차상 전혀 문제가 없다.
국민의힘이 방송법 개정안을 헌법재판소로 끌고 간 목적은 분명하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본회의 통과를 막고,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따른 부담을 회피하고자 하는 정략이 그것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해 11월 방송법 개정안이 5만 국민청원으로 과방위에 상정되자, ‘언론노조 영구장악법’, ‘민주노총 조공법’이니 하는 허위사실을 관변언론단체와 주거니 받거니 하며 반복적으로 유포해 왔다. 공영방송 영역에서 양당 정치의 적대적 공생을 강화하고 정쟁을 방송에 이식하는 ‘현행법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국민의힘의 대안을 내놓으라는 질문에는 단 한 글자도 입을 떼지 못하고 있다.
현업 언론단체들은 줄곧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집권 여당의 대안 제출을 요구해왔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이라는 대명제에 동의한다면, 법안의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토론할 의사가 있음을 밝히며 대통령실, 여당 수뇌부 등에 면담까지 수 차례 요구했으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법안이 과방위와 법사위를 지나 본회의에 직회부될 때까지 반 년 가까이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언론계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현업 언론단체들을 천박한 언어로 모욕하고 최소한의 소통 조차 거부하며 입법부의 직무를 유기해 온 것 말고 집권 여당이 보여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윤석열 정부는 이 기간 동안 공영방송에 대한 감사원의 표적 감사와 방통위 흔들기, 비판 언론인들에 대한 봉쇄소송과 대통령실 출입제한 등 언론통제 시도를 강화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집권 여당이 대안없는 반대로 방송법 개정의 길을 막고 있다. 집권 때 마다 언론자유를 후퇴시키고 공영방송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집권 세력의 전력을 보면, ‘하나도 못 먹었다’며 속내를 훤히 드러낸 여당 중진의 말처럼 올 하반기 현행법 체제 아래 임기가 보장된 공영방송 이사와 사장들을 무더기 해임하고, 친윤석열 인사들로 공영방송을 접수하는 방송장악 시간표가 가동될 것이라는 것을 모를 국민이 몇이나 되겠는가.
우리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에 요구한다.
명분도, 현실성도 없는 권한쟁의심판 청구에 매달릴 시간에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대안을 제출하라. 지금이라도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면 본회의에서라도 얼마든지 토론과 법안 수정의 길은 열려 있다. 합리적 대안도 없으면서 어떻게든 법 개정을 막아 공영방송을 집권의 전리품처럼 장악하고 국민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겠다는 반민주적 행태를 계속한다면 이미 떠나고 있는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것이다.
2023년 4월 18일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영상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