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제 한 자리에 모였다. <PD수첩>, <시사매거진 2580>, <경제 매거진>, <생방송 오늘 아침> 등 MBC의 시사프로그램을 담당하는 PD와 기자를 비롯한 제작진들이 어제 저녁 시사제작국 총회를 개최했다. 제작 중단에 들어간 <PD수첩>과 함께 우리는 시사제작국 구성원 전체의 투쟁을 전개하기로 뜻을 모았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PD수첩>이 제작 거부에 돌입한 경과를 공유했다. 그리고 그동안 누적돼온 검열과 불방조치, 제작 자율성 침해 행위가 비단 <PD수첩>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에 모두 공감했다. 시사제작국에서 제작하는 대부분의 프로그램에서 아이템 검열, 인터뷰이 검열 등이 행해져 왔으며, 막무가내 전보 조치로 프로그램이 무력화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다.
특히 <PD수첩>과 함께 MBC의 대표적인 시사프로그램인 <시사매거진 2580>은 조창호 국장 부임 이후 더욱 철저하게 망가져 왔다. 조 국장이 취임하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아이템 검열과 취재 방해, 기사 왜곡이 시작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소추 시점에서는 탄핵 관련 아이템 축소를 지시했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 이후 이어진 대선 국면에서도 대선 관련 아이템을 다루지 말라고 통보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불법정치자금 아이템이나 유명 대기업의 보수단체 지원 아이템 역시 제작이 거부됐다.
세월호 인양과 관련한 아이템에서는 ‘진실’이라는 단어와 함께 전 정권에 대한 비판, 세월호 특조위 인터뷰, 박주민 의원 인터뷰 등을 삭제할 것을 지시했다. 이 지시의 이유를 묻는 기자를 인사위에 회부하기까지 했다. ‘비선 진료’ 아이템에서도 ‘국정원’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치부인 BBK 사건의 핵심이었던 김경준 전 BBK투자자문 대표의 단독 인터뷰 아이템을 발제했을 때는 뚜렷한 이유 없이 “본인이 국장으로 있는 동안에는 절대 안 된다”며 취재 자체를 불허하기도 했었다.
<시사매거진 2580>에서 ‘시사’를 지우려는, 프로그램의 존재 의미를 부정하는 어이없는 제작지시가 이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사측은 “시사제작국에서 공정성과 객관성을 전제로 제출된 어떠한 사전 기획안도 거부되거나 제작이 중단된 적 없다”는 뻔히 드러날 거짓말로 상황을 호도하려 하고 있다.
조창호 국장은 <2580> 무력화를 위해 기존 인력에 대한 대규모 막무가내 전보를 감행했다. 부임 직후인 지난 4월과 5월에 담당 부장과 데스크, 그리고 기자 4명을 아무 예고 없이 다른 부서로 쫓아냈다. <2580>을 오랜 시간 지켜왔으며, 조창호 국장의 아이템 검열이나 황당한 취재 지시, 기사 전횡에 적극적으로 항의했던 기자들이었다.
이들이 떠난 자리는 2580처럼 호흡이 긴 보도제작물 뿐 아니라 일반 방송 뉴스조차 제대로 제작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취재 기자들이 아이템을 발제하는 것이 아니라 국장과 부장의 입맛에 맞는 아이템이 많아졌다. 최근에는 원자력 발전소, 한미 FTA처럼 예민한 아이템을 최소한의 형식적인 균형도 지키지 않은 채 편향된 방향으로 방송을 내보냈다.
현재의 <시사매거진 2580>은 강점이었던 제작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된 상태다. 부장과 데스크는 아무 결정권이 없고, 심층 아이템을 취재할 기자도 턱없이 부족하다. 과거 <2580>의 자율적인 논의 과정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로 인한 프로그램의 질적 하락은 시청자들의 외면을 부르고 있다.
시사제작국은 MBC의 자랑이었던 시사교양국과 보도제작국을 해체한 산물이었다. 조직이 해체되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어떻게든 <PD수첩>과 <2580>이라는 MBC의 자산을 지키려 애를 쓰고 있다. 프로그램에 대한 아무런 고민이나 대책 없는 조 국장이 계속 남아 있다면 20여 년간 쌓아 온 <시사매거진 2580>의 명성은 사라지고, 프로그램은 오히려 사회적 흉기로 바뀔 것이 자명하다.
조직의 해체 후 좌절감과 사명감이 뒤섞인 감정으로 프로그램을 지켜오던 우리는 시사제작국의 이름으로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 MBC의 시사, 보도제작 프로그램을 지켜내는 싸움을 새로 시작하고자 한다. 우리는 공정방송을 말살하려는 경영진의 만행을 더 이상 지켜보지 않을 것이다. 조창호 국장은 당장 사과하고, 자리에서 물러나라.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시사제작국 구성원들은 <PD수첩>과 함께, 같은 길을 걸으며 투쟁할 것을 선언한다.
2017년 7월 26일
시사제작1부 <경제매거진> : 강연섭 이호찬 송형근
시사제작2부 <시사매거진 2580> : 공윤선 권혁용 노경진 박종욱 박진주 방종혁 서태경 손재일
송록필 이신임 이주영 이지수 장재현 조의명 외 3명
시사제작3부 <PD수첩> : 강효임 김현기 서정문 소형준 이영백 전준영 조윤미 조진영 최원준 황순규
시사제작4부 <생방송 오늘 아침> <생방송 오늘 저녁> : 김동희 오상광 이모현
<첨부>
조창호 시사제작국장 부임 이후 시사매거진 2580 아이템 검열, 취재 방해, 기사 왜곡 사례
지난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선고 직후, 일선 기자들은 3개의 아이템을 탄핵 결과, 과정, 여파로 다루겠다고 했으나 조창호 국장은 ‘한 꼭지만 하라’며 축소를 지시했다. 워낙 큰 뉴스인데다 일반 아이템이 섞여 들어가면 구성상 부자연스럽다고 설득해 결국 두 꼭지로 결정됐지만 탄핵사유가 된 사건들을 되짚어보는 내용은 빠지고 탄핵 결정문 설명 + 차기대선 전망으로 하나마나한 방송이 돼 버렸다. 대선 전망 아이템에서는 당시 압도적 1위였던 문재인 후보의 싱크 2개가 너무 많다며 하나 빼라는 지시까지 내려왔다.
세월호 인양이 예정된 3월 말에는 아이템 결정을 미루다 방송 나흘전인 22일 저녁에야 제작 지시 떨어졌다. 조 국장은 이 아이템에서 전 정권에 대한 비판적 내용, 세월호 특조위 인터뷰, 박주민 의원 인터뷰 삭제 및 축소 등을 지시했다. 또 선체 인양 통해 진실 규명해야 한다는 기사를 삭제하고, 갈등을 봉합하고 안전한 대한민국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바꾸라고 지시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취재 기자를 지시 불이행으로 인사위에 회부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지난 4월, 청와대 비선진료에 연루된 김영재 의원 관련 해외진출을 돕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사보복을 당한 카자흐스탄 한국문화원의 이대원 원장 아이템. 조 국장은 이 과정에 적극 개입한 ‘국정원’을 쓰지 말고 ‘정부 기관’으로 쓸 것을 지시했다. 단어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두루뭉술하게 기사의 힘을 빼고자 하면서도 왜 ‘국정원’이란 표현을 쓰면 안 되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는 전혀 없었다.
사상 초유의 장미 대선이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조창호 국장은 ‘대선’ 관련 아이템을 하지 말 것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시사’매거진에서 ‘시사’를 빼려는 노골적인 무력화 방안이었다. 대선 직전 취재기자들이 여러 가지 대선 관련 아이템을 발제했지만 대부분 거부되고 TV토론 관련한 아이템만 방송됐다. 대선 직후에도 아이템 한 꼭지가 전부였다.
지난 5월 김경준 BBK 전 투자자문 대표의 단독 인터뷰 아이템을 발제했을 때는 합리적인 이유는 제시하지 않고, “본인이 국장으로 있는 한 절대 안 된다”며 사전 취재 자체도 불허했다. 취재기자와 영상취재기자가 사비로 인터뷰를 마치고 오자 마지못해 방송을 허가했지만, 방송 예정일을 일주일 미루고는 편성국에는 아무 이유 없이 2580의 결방을 요청하는 어이없는 꼼수마저 부렸다. 중요한 제보자와의 사전 취재를 합리적인 이유 없이 막아서기도 했다. 기사 데스킹 과정에서도 김경준의 싱크는 줄이고,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의 해명은 필요 이상으로 늘리는 등 기사의 힘을 빼려는 방해는 계속됐다.
지난달에는 **금융이 이상득 전 의원에게 3억원을 불법정치자금으로 전달했다는 아이템을 발제했으나, 박성준 부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 관련 아이템은 시기적으로 부담이 크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BBK 아이템에 이어 이 아이템까지 하면 괜한 오해를 살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였다. 조창호 국장 역시 시의성이 떨어지고, 3억 원의 액수가 적다는 등의 이유로 아이템을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