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기운 1심 판결, 강력히 규탄한다
희대의 소송에, 희대의 판결이다. 외교부의 소송 제기 자체도 어처구니없더니, 소송 결과는 더 납득하기 어렵다. 서울서부지법 제12민사부는 오늘 외교부가 MBC를 상대로 제기한 정정보도 청구 소송, 이른바 ‘바이든-날리면’ 소송에서 일방적으로 외교부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잘못됐다는 것인지 명확한 판단은 없었고, 논리적 모순과 의문만 크게 남겼다.
실제 발언 ‘감정불가’인데 허위 보도?
이번 소송의 쟁점은 당시 보도에 언급되지도 않은 외교부에 정정보도를 청구할 자격이 있는 것인지, 윤석열 대통령이 실제 욕설과 비속어를 사용했는지, 크게 두 가지였다. 결론적으로 재판부는 MBC의 관련 보도가 한미관계에 영향을 끼쳤다는 외교부의 주장을 받아들여 정정보도의 청구 자격을 외교부까지 폭넓게 인정해줬다. 또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에서 이 새끼들이’라고 말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바이든은’이라고 발언했다고 볼 만한 근거가 부족하고, 이를 MBC가 제대로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MBC 보도는 ‘허위’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MBC가 보도해야 할 ‘정정보도문’에, “사실 확인 결과,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없고, ‘바이든은’이라고 발언한 사실도 없음이 밝혀졌으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라고 적시했다.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도대체 무슨 사실이 확인됐다는 것인가. 보도가 허위가 되기 위해선 윤 대통령의 실제 발언이 무엇인지부터 밝혀져야 한다. 1년 넘게 진행된 재판 과정에서 외교부는 실제 윤 대통령의 발언이 무엇인지 특정하지 않았다. 대통령실이 주장했던 것처럼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었다고도 하지 않았다. 재판부가 외교부가 신청한 음성 감정 요구를 수용해 진행했지만, 음성감정 전문가는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판독 불가라고 밝혔다. 반면 ‘이 새끼’, ‘쪽팔려서’라는 욕설과 비속어 발언은 확인된다고 감정했다. 재판부 역시 판결문 곳곳에 윤 대통령이 실제 한 발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을 수차례 언급했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정정보도문에는 ‘바이든은’이라고 발언한 사실도 없음이 ‘밝혀졌다’고 단정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면서 148개 국내 언론사와 똑같이 듣고, 들리는 대로 똑같이 전달한 MBC 보도는 ‘허위’라고 판단했다.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감정할 수 없다는 결과도 이해할 수 없지만, 백번 양보해 ‘판독 불가’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정답’이 없는 ‘오답’이 가능한가. 어떻게 재판부는 윤 대통령이 ‘바이든’이라고 발언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증명 책임이 MBC에? ‘공적 감시’ 언론책임 위축 우려
이번 판결이 더욱 심각한 것은, 기존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부인하며 공적 감시와 비판을 하는 언론의 독립과 자유를 크게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 대법원은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으며, 정정보도를 청구할 경우 진실 여부를 밝히는 책임은 청구자가 부담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아 보도 내용의 중요 부분이 진실에 합치한다면 그 보도의 진실성은 인정된다고 봤다. 지엽적인 시시비비로 공적 사안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담당하는 언론의 책임을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재판부는 “사람의 음성은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지 않으면 그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어렵고 휘발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발언자 스스로도 자신이 사용한 단어가 정확히 무엇인지 기억하기 어려운 특징이 있다”면서 윤 대통령의 실제 발언이 무엇인지 증명할 책임을 MBC에 돌렸다. 그러면서 발언이 이뤄진 시각, 장소, 배경, 전후 맥락, 당시 발언을 들은 박진 장관의 진술 등을 종합해볼 때, 윤 대통령이 미국 의회와 바이든을 향하여 욕설과 비속어를 사용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단정했고, MBC가 보도의 근거로 삼은 자료는 신뢰할 수 없거나 증거가치가 현저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카메라에 잡힌 풀영상을 접한 다른 언론사의 같은 판단과 당시 대통령실 관계자 등이 보도 자제를 요청했던 정황 등은 축소 해석했다.
요컨대, 이번 판결은 윤 대통령의 실제 발언은 과학적으로 밝힐 수 없지만, 윤 대통령은 ‘바이든’이라고 말하지 않았고, 이를 전달한 MBC 보도는 허위라는 이상한 논리의 판단이다. 실제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바이든은 아니’라는 결론을 자의적으로 정해놓고, 어색하게 꿰맞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도대체 무엇이라고 말한 것인가? ‘날리면’인가? MBC는 무엇을 어떻게 정정해야 한다는 것인가? 당시 ‘바이든’으로 들었고 지금도 ‘바이든’으로 듣고 있는 대다수 국민들의 기억과 청각은, 1심 재판부의 판결대로 MBC가 정정보도를 하면, 다 사라지고 정정되는 것인가?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비상식적일 뿐 아니라 언론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킬 이번 판결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또한 진실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권력 감시와 비판이라는 언론의 사명 역시 끝까지 지켜갈 것임을 밝힌다.
2024년 1월 12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