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은 감히 언론인을 참칭하지 말라
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던 세월호의 수많은 진실 중 하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구조된 단원고 학생이 생사의 경각에서 헬기를 기다리며 다섯 번이나 이 배에서 저 배로 옮겨지는 사이, 바로 옆에서 해경 간부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헬기가 뜨고 내렸다는 믿기 힘든 끔찍한 비극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인명 구조 체계의 총체적 부실은 여전히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다. 그 앞에서 ‘세월호 피로감’을 거론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너무나도 슬프고 가슴 아픈 세월호의 진실 하나가 밝혀진 당일, 우리는 괴롭게도 세월호 참사를 ‘무시’하고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냈던 이름을 다시 직면해야 했다. 바로 자유한국당에 ‘인재’로 영입됐다는 이진숙이다. 이진숙은 세월호 참사 당시 MBC의 보도본부장으로 ‘세월호 전원 구조 오보’와 ‘유가족 폄훼 보도’ 등 적폐 시절 ‘MBC 세월호 보도 참사’의 책임자이자 당사자였다.
그 때 이진숙은 무엇을 했던가? 그는 ‘유가족 폄훼 보도’의 당사자를 오히려 ‘MBC의 스타’로 추켜세웠다. 방문진 이사회에 출석해서는 “속보 경쟁이 도를 넘었기 때문에 (오보는) 어쩔 수 없었다”, “무슨 일만 생기면 기관이나 정부에 책임을 묻는 풍조는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국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비판과 감시라는 언론의 본분마저 망각한 망언이었다. 이후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 대상에 올랐으면서도 시종일관 조사를 피해 다니며 진실을 은폐하기에 급급했다. 이진숙이 정치 무대에 등장하는 그 날, 세월호의 숨겨졌던 진실 한 토막이 인양됐다. 앞으로 이진숙이 무엇이 되고자 하든 무슨 일을 하든, 세월호 참사의 무거운 책임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이진숙은 감히 과거를 묻지 말라고 한다. 노조를 탄압했던 과거 행적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회사 일을 했을 뿐’이라고 한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우리는 이 말을 참을 수 없다. 39일, 170일 그리고 72일 파업 투쟁에 나섰던 우리는 이진숙의 이름과 행적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공정방송’을 요구하는 조합의 정당한 파업에 ‘불법 정치 파업’이라는 더러운 딱지를 붙인 자가 누구였는지, 정권의 낙하산 김재철의 비리 행위를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옹호한 자가 누구였는지, 노조 탄압과 징계, 보도 간섭과 사유화로 대전MBC를 파국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 누구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MB정권 국정원의 시나리오대로 공영방송 MBC를 정권에 갖다 바치기 위해 은밀하게 ‘민영화’를 거래하려 했던 것도 이진숙이고, 이제는 고인이 된 이용마 기자 등 해직 언론인들을 양산하는데 앞장섰던 것도 이진숙이다. 이 모든 가슴 떨리는 일을 간단히 ‘회사 일’이라고 얼버무리는 그에게 죄책감이나 반성의 기미는 찾아볼 수 없다. 이런 것이 바로 ‘부역’이고 ‘악의 평범성’이다.
권력을 쫓아 도달한 곳이 결국 정치권이라는 사실은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 한다. 이진숙은 감히 언론인 행세를 하지 말라. 이미 그는 2012년 파업 당시 MBC기자회에서 제명당했다. 동료들로부터 기자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선고를 받은 것이다. 비록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해 숱한 비판에 직면해 있다 하더라도, 사회의 ‘공기(公器)’인 언론을 ‘흉기(凶器)’로 삼았던 사람에게 기자라는 이름을 부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성 종군기자’라는 그럴듯한 겉포장 뒤에 감춰졌던 이진숙의 실체는 이미 그때 드러났다. 이제 정치인이 되기로 마음먹은 이진숙의 참모습은 하루하루 더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다. MBC본부는 앞으로 그의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두 눈 부릅뜨고 주시할 것이다.
2019년 11월 1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