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언로(言路)를 틀어막고도 공영방송을 자임하는가
인트라넷 게시물 일방적 삭제는 ‘표현의 자유’ 침해하는 범죄행위
회사가 그제(7일) 사내 인트라넷 ‘커뮤니케이션’란의 게시물들을 대거 삭제했다. ‘김장겸 사장 퇴진’을 촉구하는 사원들의 기명 성명 13건을 일방적으로 지웠다. 게시물을 올린 당사자들에 대해서는 1개월간 게시판 사용마저 제한했다. 사측은 해당 게시물들이 “조직 내 건전한 의사소통과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라는 게시판 운영 취지에 위배되므로 전 직원이 열람하는 회사의 게시판에 계속 공개하는 것은 부적합하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전자게시판 운영 지침’을 어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운영 지침’이야말로 조직 내의 건전한 의사소통과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를 가로 막는 폐단이다. 대체 무슨 권위와 정당성으로 자율적인 사내 언로를 강제 차단하는 것인가.
회사는 지난 2015년 12월 인트라넷 ‘자유발언대’ 게시판의 명칭을 갑자기 ‘커뮤니케이션’으로 바꿨다. 그러면서 ‘전자게시판 운영위원회’라는 것을 조직했다. 경영인프라국장(위원장)과 총무부장, 정보콘텐츠부장, 정책기획부장, 정책홍보부장 등 5인이 위원으로 구성됐다. 일반 사원들을 대표하는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됐다. 전 사원이 공유하는 게시판 운영을 몇몇 사측 간부들이 독점하겠다는 횡포이고, 검열을 제도화하겠다는 반민주적 처사이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문제의 ‘전자게시판 운영지침’이다. 그제 자행된 게시물 삭제 조치도 이 지침에 의거한 운영위 회의에서 의결됐다고 한다.
삭제의 근거로 제시된 문제의 ‘운영 지침’ 조항들은 모호하기 짝이 없다. ‘게시판의 목적과 용도에 부합하는 게시물’만 올리라는 것이 지침의 핵심 내용이다. ‘회사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특정인 또는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하는 내용, 사생활 침해 및 인신공격성 내용’ 등이 게시 금지 사항이다. 그러나 ‘회사의 이익 침해 여부’는 가치관과 해석 기준에 따라 논란이 불가피한만큼 특정 일방이 자의적으로 재단할 수 없다. 특히, 명예훼손이나 모욕 행위 여부는 고도의 법률적 판단이 전제돼야 하는 사안이다. 사측의 ‘온라인 검열’은 부실한 지침을 급조해 이현령비현령 식으로 사내 여론에 칼질을 하겠다는 폭력일 뿐이다. 더욱이 이번에 삭제된 게시물들은 한결같이 ‘MBC의 경쟁력과 위상 회복’에 초점을 맞춘 애사심의 발로였다. 그 전제 조건으로 김장겸 사장과 고영주 이사장의 퇴진을 요구한 것이다.
김재철 체제 이후 회사는 비판적인 사내 여론에 무소불위의 폭력을 휘둘러왔다. 게시물을 통해 ‘공정방송 훼손’과 ‘부당노동행위’ 등을 지적하면 여지없이 중징계가 내려지거나 부당전보를 당하기 일쑤였다. 이제는 아예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내 여론을 강제 검열해 공영 언론사로서의 자기 정체성도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범죄 행위이다. 최후가 임박한 ‘박근혜 잔당’의 부질없는 몸부림일 뿐이다. 김장겸 사장은 하루 빨리 자진 사퇴하라. 불의에 저항하는 외침을 억지로 틀어막을수록 무너진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투쟁은 더 격렬해질 것이다.
2017년 6월 9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