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성 잃은 인사 속도전, 원칙 제시가 우선이다
노동조합은 지난달 부산MBC의 상시적인 위기를 타개하고 지역 대표 언론사로서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새로운 사장에게 요구되는 자질 무엇인지 조합원들에게 물었고, 구성원 대다수는 내부조직에 대한 이해와 리더십, 그리고 지역방송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철학이 가장 중요하다고 꼽았다. 3년 만에 자사 출신 사장이 배출되면서 내부조직에 대한 높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안정적인 조직 운영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지만 최병한 사장의 첫 인사와 행보를 지켜보는 구성원들은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큰 것이 사실이다.
3월 24일 취임 이후 사장은 일주일 만에 보직국장 인사를 단행했고, 취임 이후 20일 이내에 조직개편과 본부장 임명, 보직부장과 사원 인사까지 일사천리로 추진했다. 본부장 직제가 신설되고 5개국이 6개국으로 개편되고 2개의 임시특별기구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등 큰 폭의 변화가 있었지만 정작 본부장의 역할과 위상은 무엇인지, 새롭게 신설되는 기구들의 기능과 목표는 무엇인지 알고 있는 구성원들은 거의 없다.
인사와 조직개편에 있어 가장 중요한 ‘왜(why)’에 대한 설명이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이유를 모른 채 앞으로 달려만 가고 있는 인사 속도전은 원칙과 방향성마저도 불투한 실정이다. 방송본부장의 임명동의를 위한 정책설명회 자리에서 본부장 스스로도 향후 본인의 역할에 대해 뚜렷하게 설명하지 못한 장면은 이번 인사 난맥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국가보조금 사업을 수행하는 주요부서가 영문도 모른 채 사라졌다가 부활하는 과정과 본부장 내정자 변동에 따라 임시특별기구의 직속이 갑자기 바뀌게 된 것 등도 사장의 조직개편이 얼마나 즉흥적이었나를 반증하고 있다.
조직개편은 현업부서의 고충과 업무효율화에 대한 의견을 종합해 진행해야 했음에도 구성원들의 의견청취 과정은 완벽히 생략됐고, 인사 역시 각 직책에 대한 역할 정립이 선행된 후에 그에 맞는 능력을 갖춘 인물을 지정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위인설관이라는 인상이 컸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새로운 조직개편으로 보직 개수가 사장을 제외하고도 30명으로 늘었다. 정규직 구성원 3-4명 중 1명이 보직간부가 되면서 현업에서 실무를 담당해야 하는 인원이 줄어드는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또한 조합의 설문조사에서 조합원들은 차기 사장의 최우선 당면과제로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 콘텐츠 전략수립을 꼽았지만 지금까지 해당 업무를 위해 최선을 다해오던 부서를 팀으로 격하시키는 등 구성원들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조합은 사장과의 면담을 통해 인사와 조직개편의 의문점에 대해 질의를 했지만 경영수지 개선을 위해라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본부장 직제 개설과 관련해서도 사장은 취임사를 통해 ‘영업적자를 줄이고 흑자경영의 기초를 튼튼히 다지기 위해 본부장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당당히 밝혔다. 지역방송 대부분이 경영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흑자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데 대해 반대할 구성원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윤을 남겨 주주에게 배당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지역 문화 창달과 지방 권력 감시가 존재 이유인 지역방송으로서 사장이 금과옥조처럼 말하는 수익을 좋은 프로그램과 보도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재투자하고 지역민들의 신뢰를 얻을 것인가에 대한 비전 제시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되묻게 된다. 또한 본부장 제도가 수익 개선을 위해서라는 선언에 비추어 방송제작 임무 부서들의 직제 상 최고 책임자 위치에 놓인 방송본부장에게 수익과 공정방송 사이의 줄타기를 요구하게 되지 않을까 크게 우려된다.
때문에 조합은 최병한 사장의 취임 이후 계속해서 사장이 직접 나서서 조직 운영의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는 정책설명회를 열고 인사와 조직개편의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혼선과 혼란을 최소화할 것을 요구해왔다. 성과를 내겠다는 호언장담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목표는 물론 현업 부서 인력난 타개를 위한 신입사원 채용 계획과 급변하는 대내외 환경 속 위기 극복을 위한 전략도 함께 제시할 것을 요청한다. 조직 구성원들의 신뢰는 사장이 제시하는 운영 원칙과 그에 따른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평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23년 4월 20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부산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