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측이 올해 연차 유급휴가의 사용을 촉진하는 ‘연차촉진제’를 전격 시행할 방침이다. 이미 시행은 결정했고, 내일(6.22) 보직자들에게 시행 방법 등을 교육한 뒤, 다음 주 공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적자가 예상되는 데다, 예년에 비해 연차 사용률도 크게 떨어져 연차촉진제를 시행할 수밖에 없다는 게 사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업무 특성상 휴가를 사용하기가 녹록지 않은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연차 촉진을 할 것인지, 제도 시행 이후에도 불가피하게 사용하지 못할 경우는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은 불분명하다. 단순히 비용 절감 차원에서 일단 시행하고 보자는 것 아닌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사측 “연차촉진제는 사용자 권한”…보상연차 ‘2백만 원’은 보장
연차촉진제는 근로기준법 61조에 따라 사측이 조합과의 합의 없이도 시행할 수 있는 제도다. 연차촉진제를 시행하려면, 사측은 연말 기준 6개월 전에 노동자에게 미사용 연차 일수를 알려주고, 노동자가 사용 시기를 정해 통보하도록 서면으로 촉구해야 한다. 노동자가 연차 사용 시기를 정하지 않으면, 10월 말까지 사측이 연차 사용 시기를 정해 노동자에게 서면으로 알려야 한다. 이렇게 연차 사용 시기가 정해지면 사측은 연차 기간 노무 수령을 거부해야 하며, 이런 절차를 지키면 미사용 연차에 대해 보상 의무가 사라진다. 사측은 지난해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결과, 사용하지 않은 연차는 모두 보상해줘야 한다는 판단을 받은 만큼 경영상 연차촉진제 시행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사측에 따르면 현재까지 전직원의 의무연차 사용률은 20%가 되지 않는다.
다만, 사측은 당초 보상+의무 연차 모두 촉진하려 했던 입장에서 물러서, 의무연차에 한해 연차촉진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앞서 조합은 사측과의 논의 과정에서 “연차 보상한도를 200만 원으로 정한 것은 노사 간 합의 사항이고, 보상연차까지 촉진하는 것은 노사 합의 위반”이란 점을 강하게 지적했다. 이에 사측은 조합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200만 원 보상은 기존대로 유지하고, 나머지 의무연차만 촉진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서, 연차촉진제를 시행하더라도 예년과 크게 달라질 게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현실…본질을 직시하라
그럼에도 연차촉진제 강행에 대한 사내 구성원들의 우려는 크다. 취재, 제작 등의 부문에서는 예년에도 연차 휴가를 모두 사용할 상황이 안 돼 연차를 낸 채로 회사에 나와 근무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사측은 이런 식으로 근무했던 구성원들이 얼마나 있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회사는 올해 연차 사용률이 낮은 것이 연차 보상을 더 받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만성적인 인력 부족과 높은 업무 강도 등으로 대휴는 물론 미보상 대휴조차 사용하지 못하는 구성원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 마당에 연차를 마음 편히 쓰기는 더 힘들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결국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근본적 문제에 대한 고민이나 해결 없이, 예년보다 훨씬 많은 80% 이상의 의무연차를 6개월 동안 모두 사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연차촉진제를 무리하게 시행할 경우 프로그램 제작, 취재, 사업 진행 등에 공백이 생길 것이란 건 불 보듯 뻔하다. 연말까지 허덕이며 일을 하다 어쩔 수 없이 연말에 다수의 취재 인력이 연차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 뉴스는 제대로 방송될 수 있겠는가. 예능, 라디오, 교양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구성원들이 연차를 쓴다면 프로그램은 온전히 나갈 수 있는가. 그로 인해 프로그램 경쟁력이 약화될 상황을 회사는 과연 면밀히 따져보고 있는가.
구성원의 애사심을 볼모로 한 無대책을 지적한다
사측은 연차는 당연한 노동자의 쉴 권리이고, 그동안 일을 우선하며 휴가를 온전히 누리지 못한 MBC 구성원들의 문화를 연차촉진제 시행으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좋은 말이다. 구성원들도 당연히 쉬고 싶다. 아무런 문제없이 연차를 쓸 수만 있다면 마다할 리 없다. 하지만 현재 회사의 준비 상태를 보면, 보상비용을 줄이겠다는 목적만 보일 뿐, 현실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우려들에 대한 대책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 사측에 묻는다. 혹여 구성원들의 업무에 대한 책임감과 애사심에만 여전히 기대고 있는가. 연말까지 연차 촉진이 안 된다 해도 결국엔 구성원들이 휴가를 포기하고 일을 택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연차촉진제 시행이 사측의 권한이라면, 이를 제대로 운영할 책임도 사측에 있다. 시간에 쫓겨, 비용 절감에만 눈이 멀어 뻔히 예상되는 혼란을 외면해서는 이 제도가 제대로 안착되고 운용될 리 없다. 인력 충원에 대한 지속적인 요청에도 불구하고 긴축 경영을 이유로 올해 신입사원 채용조차 주저하고 있는 회사가 연차를 쓰라고만 강제하는 것은 책임 방기이다. 단순히 연차 사용이 가능할 것이란 공허한 주장이 아니라, 경쟁력 하락을 걱정하지 않고 구성원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실효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 연차를 다 못 쓰고 불가피하게 일하게 되는 경우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히 밝혀야 한다. 졸속적인 연차촉진제 강행으로 보상비용 아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2023년 6월 21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서울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