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부문 24기 이상 성명] 기억하는가

“손님, 어디로 가십니까?”
“네? 아… 여의도… 증권거래소 앞으로 가주세요.”

시간을 30년 전으로 되돌려봅니다. <뉴스데스크>가 ‘땡전뉴스’라는 오명으로 불리던 시절, 택시를 타면 ‘MBC로 가주세요’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습니다. MBC뉴스는 국민들에게 신뢰는커녕 화를 돋우는 분노의 대상이었습니다. 집회와 시위를 취재하다 쫓겨나기 일쑤였고, 성난 시위군중에 몰매를 맞기도 하였습니다.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조롱과 야유로 치욕적인 수모를 당했던 것처럼.

MBC뉴스는 군사독재정권을 위해 복무하던 권력의 충견이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의 MBC뉴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총칼을 앞세운 공포의 시대였다는 변명이라도 있었는데,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는 권력지향의 굴종만이 있었습니다. 사장은 감투에 대한 보답으로 스스로 권력의 품에 안겼고, MBC를 권력에 상납했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고 청와대에 불려가 쪼인트를 맞았다는 게 수치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분발로 화답했습니다. 노조 집행부와 기자회장을 해고하고,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들을 유배시키고, 진실을 말하는 기자 PD 아나운서들을 본연의 업무에서 배제시키고 펜과 마이크를 빼앗았습니다. 그렇게 MBC에선 진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감시와 비판은 사라지고,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려 불의한 권력을 옹위하는 왜곡과 편향이 난무했습니다. 3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국민은 MBC에 대한 신뢰를 거두어들이며 바닥의 시청률로 경고의 신호를 보냈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30년 전, 대학가에서 발원하여 도심의 거리를 화이트칼라로 뒤덮은 6월 민주화항쟁은 우리에겐 방송민주화의 시발점이었습니다. 누구는 감시를 피해 후미진 여인숙에서 참회와 궐기의 성명서를 써내려갔고, 누구는 은밀하게 노조 설립을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방송민주화 대장정은 길고도 험난했습니다. 제작거부와 파업이 이어졌고, 해직의 아픔이 있었고, 경찰병력이 사옥에 난입하는 전무후무한 사태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공정방송을 향한 투쟁은 멈춘 적이 없었고, 그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MBC는 그 어떤 권력에도 굴하지 않는 공정방송의 첨병이 되었습니다. MBC는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방송이 되었고, 우리 모두의 자부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정직하지 못한 권력이 요리조리 말을 바꿔가며 사대강 사업을 강행할 때, 자원외교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국고를 탕진할 때, 세월호 참사로 국가의 무능이 도마 위에 올랐을 때, 비선의 국정농단으로 국민이 탄식을 토해낼 때, 감시의 눈은 애써 권력을 피해갔고 비판의 칼날은 주저없이 권력의 반대편을 향했습니다. MBC는 권력의 충견이 되어 다시 30년 전의 암흑 속으로 추락하였습니다.

단지 불의한 권력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공정방송을 지키고자 싸웠으나 힘에 부쳤고, 권력은 뻔뻔했고, 법과 제도는 무력했고, 악화는 양화를 구축했고, 시대는 암울했습니다. 불과 몇 년 만에 MBC는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그 중심에 본분을 저버리고 국민을 배신하여 스스로 권력의 개가 된 한줌의 경영진이 있습니다.

노조의 집회가 있을 때마다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주먹 불끈 쥐고 공정방송을 외치고, 육두문자 섞어가며 선배들의 맹성을 촉구하던 그때의 막내기자들이 스물 몇 해가 지나 보도책임자가 되고 경영진이 되어 공정방송을 호소하는 지금의 막내기자들에게 징계의 칼을 들이댑니다. 눈앞에서 벌어진 이 해괴한 장면, 우리 MBC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습니까. 선배들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선배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불쑥 그런 질문이 날아들 것 같아 차마 후배들의 눈을 바로 볼 수가 없습니다. 방송민주화의 과실은 알뜰하게 누리면서, 공정방송의 탑이 무너지지 않도록 기틀을 견고히 구축하고 다지는 일에 소홀했습니다. 그 책임이 선배인 우리에게 있습니다.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국민은 촛불을 들어 무능하고 불의한 권력을 퇴출시켰습니다. 역사는 잠시 후퇴하는 듯 보여도 결국 앞으로 나아갑니다. 온 국민을 공황상태에 빠뜨렸던 황우석 사태에서 증명하였듯이, MBC는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언제나 진실의 편에 선 ‘만나면 좋은 친구’였고 신뢰받는 방송이었습니다. MBC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MBC의 정상화, 그 시작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정치부장, 보도국장, 보도본부장으로 완장을 바꿔 차며 공영방송 MBC를 무너뜨리기에 앞장섰고, 국정농단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MBC 구성원들과 시민사회의 반대에도 아랑곳 않고 사장 자리에 오른 김장겸의 퇴출입니다. 김장겸의 입사동기들과 선배들인 우리는 김장겸을 사장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MBC에서 김장겸을 퇴출시키고 공영방송 MBC를 정상화하는 길에 기꺼이 후배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이에, 우리는 한 목소리로 요구합니다.

김장겸은 당장 MBC를 떠나라. 우리는 권력을 등에 업은 칼춤을 추며 MBC를 만신창이로 만든 패악질의 장본인과 단 하루도 같이 있을 수 없다. 더 이상 MBC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고 당장 떠나라.  MBC는 그대 따위가 알박기나 하는 더러운 땅이 아니다.

2017년 6월 9일
김동섭 김상철 김성환 김세용 김원태 김종화 김현경 박태경 서태경 송기원 송요훈 송형근 심재구 우경민 유덕진 윤도한 이도윤 이재훈 임대근 임정환 임태성 전광선 정형일 조강진 조수현 홍순관 홍우석 (보도부문 24기 이상 27명, 가나다 순)

건배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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