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부지방법원 제21민사부(재판장 김정운)가 <MBC정상화위원회>의 효력 정지 등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것은 상식적으로는 물론이고 법리적으로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매우 잘못된 결정입니다.
2018년 1월 발족한 <MBC정상화위원회>(이하 ‘정상화위원회’)는 과거 MBC에서 벌어진 언론자유와 방송독립 침해, 공영방송 가치 훼손의 배경과 원인을 객관적으로 조사하고 재발을 막기 위해 구성원들의 동의에 기반해 노사 합의로 설치된 기구입니다. 재판부가 가처분을 인용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근로자대표인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의 유효한 동의가 있었는지 의심스러우며, 주요 조사 대상자가 주로 2, 3노조 소속인데 이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과반노조의 유효한 동의가 없었다?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 과반 노조의 동의 절차를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과연 정상화위원회가 근로자에게 불리한 변경인지부터 의문입니다. 정상화위원회는 2008년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국가정보기관인 국정원을 불법적으로 동원해 정권 차원에서 자행된 방송장악과 이 시기에 있었던 편파, 왜곡 보도에 대해 진실을 규명하고 바로잡는 것을 목적으로 설치됐습니다. 이같은 방송장악은 명백한 불법 행위였으며, 김재철 전 사장은 국가정보원법과 방송법 등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정상화위원회의 권한은 회사에 이미 설치된 감사의 권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출석 요구와 자료제출 요구권, 징계요청 권한입니다. 다만 감사와 달리 조사 대상을 방송장악과 편파 왜곡 보도로 한정해, 오히려 감사의 권한보다도 축소된 권한을 가진 기구입니다. 감사가 회사 전체의 투명성을 높이고 개별 구성원들의 권익을 보호하듯, 정상화위원회의 활동 역시 공영방송 MBC의 신뢰를 회복하고 언론 자유와 제작자율성 등 구성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설사 그 절차상 근로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이라 하더라도 절차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전체 직원의 64%가 가입해 있는 과반 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가 이같은 기구 설치에 동의한 것이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제1노조(MBC본부) 조합장의 대표권 범위를 판단할 수 있는 아무런 증거가 제출되지 아니하였다.”, “제1노조 내부에서 공식적인 의견수렴 절차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증거도 부족하다.”고 적었습니다.
결정문에서 1노조라고 표현한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전체 근로자의 64%가 가입한 과반 노조입니다. 재판부 스스로도 결정문에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과 관련해 “노동조합 규약 등에 의해 조합장의 대표권이 제한되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조합장이 노동조합을 대표하여 동의하면 된다”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했습니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조합장이 동의서에 서명한 것이 분명히 증거로 제출됐는데도 이게 조합 동의를 받았다고 볼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설사 조합 내부의 의견수렴 절차가 충분히 있었는지가 쟁점이라면, 이 역시 명백한 오판입니다. MBC본부는 사장 선임 전인 2017년 11월 사옥 내에 설치한 게시판과 SNS를 통해 MBC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취합된 주요 주제 중 하나가 방송장악 청산, 공정방송과 제작자율성 보장이었으며, 구성원들 다수가 이같은 목적의 기구 설치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습니다. 노동조합은 이러한 의견수렴을 바탕으로 회사에 사내 특별 기구 설치를 요구했고, 기구 설치에 절차적으로 동의한 것입니다.
‘정상화위원회’의 운영규정은 MBC본부 내의 자주적인 의사결정 절차에 따라 충분히 논의한 뒤 본부장이 조합원들을 대표해 운영규정 신설에 동의했습니다. 이를 위해 운영규정 제정 10일 전인 2018년 1월 8일 대의원 간담회를 열어 충분한 설명과 의견수렴 절차를 거쳤고, 같은 달 발행한 노보를 통해서도 ‘정상화위원회’ 출범 사실을 공개적으로 공지했습니다. 또한 출범 후에도 대의원회에서 정상화위원회의 활동과 관련된 상황을 여러 차례 보고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재판부가 “조합장의 동의만으로는 내부적으로 의견수렴 절차가 있었다고 볼 수 없고 유효한 동의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고 한 것은 이러한 사실 관계를 무시하고, 법률에서 보장하는 노동조합의 자주적·민주적 운영 원리를 정면으로 부정한 억지 논리입니다. 대법원 판례까지 무시한 재판부가 과연 노동조합의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라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2. 이 규정으로 직접적인 불이익을 받는 당사자는 2,3노조 소속이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정상화위의 조사 대상 기간은 2008년 2월부터 2017년 11월로 한정되는데 위 기간은 주로 2,3 노조 소속 근로자들이 소위 요직에 있었던 기간”이라면서 “이 규정의 제정으로 직접적 불이익을 받는 당사자는 2,3 노조 소속 근로자들”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정상화위원회가 출범하게 된 역사적 맥락과 의미를 무시하고, 오로지 정치적 유불리만을 따진 정치 논리입니다.
정상화위원회의 운영규정은 어느 노조 소속인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MBC 소속 모든 근로자들에게 적용됩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하에서 공영방송 MBC는 국정원의 지휘 아래 철저하게 권력에 장악됐고, 세월호 사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등에서 편파 왜곡보도를 일삼아 국민의 외면과 지탄을 받았습니다. 정상화위원회의 활동은 이 잘못된 역사를 기록하고 바로잡기 위한 것으로 공영방송 MBC가 시청자에게 사과하고 거듭나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입니다.
정상화위원회의 조사 대상이 된 당시 간부들은 상당수가 세월호 사건, 대통령 선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등에서 편파 왜곡 보도를 저지르고 MBC 방송강령과 편성 규약, 보도 준칙을 위반한 사람들입니다. 당시 경영진은 이에 저항하는 노동조합을 파괴하기 위해 어용노조를 지원했습니다. 노동조합을 탄압한 부당노동행위로 MBC는 2017년 특별근로감독을 받았고, 당시 경영진이 노동법 위반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당시 편파 왜곡보도를 주도한 간부들은 이후 MBC 정상화를 위한 작업이 시작되자 3노조에 대거 가입했습니다. 애초부터 2,3노조 소속이어서 조사 대상이 된 것이 아니라, 편파 왜곡보도의 당사자들이기 때문에 조사 대상이 된 것이며, 이후 이들 중 상당수가 3노조에 대거 가입한 것입니다. 재판부의 결정은 인과 관계를 뒤집어 자의적으로 왜곡한 잘못된 판단입니다. 2,3노조 소속 근로자들이 불이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방송 장악과 편파 왜곡보도를 저지른 사람들이 2,3노조로 모인 것입니다.
더구나 정상화위원회의 조사 대상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MBC본부(1노조) 소속 조합원들이었습니다. 방송 장악 과정에서 벌어진 편파 왜곡보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으며, 정상화위원회의 활동은 사람이 아니라 편파 왜곡보도 사례들을 기준으로 조사대상을 선정하고 보고서를 작성해왔습니다.
서울서부지법 민사21부의 이번 결정은 방송 장악의 역사와 정상화위원회 출범의 취지를 완전히 무시한 채 결과적으로 누구에게 유리하고 불리한가만 따진 정치 논리에 기대고 있고, 법리와 민주주의의 원칙, 언론 자유에 대한 이해 없이 편견과 오해로 가득한 결정이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편파 왜곡보도를 자행하고 언론 자유와 제작 자율성을 훼손한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이의 재발을 막는 것은 시청자들에 대한 공영방송 MBC의 의무입니다. 이러한 목적으로 설치된 <MBC정상화위원회>의 활동을 재판부가 억지 논리를 동원해 정지시킨 것에 대해 MBC본부는 2천 명의 조합원들을 대표해 강력히 항의합니다. MBC본부는 <MBC정상화위원회>의 정상화를 위해 필요한 모든 절차를 밟아나갈 것입니다.
2019년 1월 29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