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15대 본부장에 이호찬 기자가 선출됐다. 2003년 기자로 MBC에 입사한 이호찬 신임 본부장은 2015년부터 2년간 MBC본부 보도민실위 간사를 역임했으며 본부장 출마 직전까지 뉴스룸 정치팀에서 일했다.
지난달 21일 열린 MBC본부 15기 집행부 출범식에서 이호찬 본부장은 “MBC를 지켜내고 조합원들을 지켜내는 싸움에 버팀목이 되겠다”고 밝혔다. 언론자유와 공영방송의 위기가 본격화된 상황, 임기 2년 계획을 듣기 위해 지난 12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이호찬 본부장을 만났다. 다음은 이 본부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지난달 MBC본부장에 취임하셨는데 업무 파악은 완료하셨나요?
“새 집행부가 출범한 지 3주 정도 지났는데요. 빠르게 업무 파악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과 회사를 둘러싼 전반적인 상황 파악, 또, 올해 사업계획과 예산안 등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MBC가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이른 시일 내에 정비를 마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노조 집행부 해보셨잖아요. 그때와 지금의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2015년부터 2017년 초까지 2년 동안 노동조합에서 보도민실위 간사로 일했어요. 그때도 사실 엄중한 시기여서 많은 책임감을 느끼긴 했지만, 그때는 집행부의 일원이었고 이제 조합 전체를 책임져야 하는 자리죠. 위원장으로서의 앞으로 2년을 생각하면 어깨가 훨씬 더 무겁기는 합니다.”
본부장 출마 계기가 있을까요?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에 공영언론에 대한 전방위적 탄압이 진행됐고 그 탄압의 정점에 MBC가 있었잖아요. 바이든-날리면 국면이나 일방적인 도어스테핑 중단, 전용기 탑승 배제 조치 등의 과정을 보면 언론 자유에 대한 이 정권의 인식 수준을 알 수 있고요. 또, 지난해 진행됐던 MBC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나 고용노동청의 특별근로감독,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방문진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보면 이후 MBC에 대한 공격이 어떻게 자행될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노동조합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란 걸 부인할 수 없고, 누군가는 그걸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위원장 제안이 왔는데 그 책임을 미룰 수 없겠더라고요.”
막상 제안이 왔을 땐 어땠나요?
“‘올 것이 왔구나’ 싶었어요. 평시면 모르겠는데 MBC가 전시 상황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이고, 전시인 상황에서 위원장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상황이 상황인 만큼 피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셨어요?
“상황이 안 좋으니까 오히려 더욱 미룰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치팀에 있으면서 후배들이 힘들어할 때 그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각자의 위치에 따라 저마다 감당해야 할 역할이 있고, 힘들지만 각자가 그 역할을 다할 때 조금씩 세상이 변하는 게 아니겠냐고요. 그런 말들이 다 부담이 됐던 거죠. 피하기보다는 짐을 짊어지는 것이 오히려 마음은 더 편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행부 찬반 투표에서 95.9%의 찬성률로 당선되셨습니다. 95.9%의 의미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조합원들도 MBC를 둘러싼 환경이 얼마나 엄중한지, 이 시기 노동조합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헤아리고 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정권의 전방위적인 탄압이 들어오고 있고 앞으로 더 거세질 텐데, 조합을 중심으로 조합원들이 단결하는 모습 보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판단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저도 그렇고 집행부도 많이 놀랐습니다. 투표율이 81.1%였는데, 2년 전 선거와 비교하면 투표율도 올랐고 찬성률도 올랐어요. 집행부에 큰 힘이 됐고, 조합원들 역시도 이런 높은 찬성률에서 희망을 봤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거 기간에 조합원들 많이 만나셨을 텐데 조합원들의 주된 요구는 뭐였나요?
“요구보다 엄혹한 시기에 결심해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어요. 격려를 많이 해주셨죠. 조합원들의 여러 이야기 중에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면 ‘소통’이었다고 생각해요.”
왜요?
“조합에 바라는 점을 여쭤봤을 때 대부분 답이 소통이었어요. 서울과 지역, 조합과 조합원, 조합과 회사와의 소통을 바라는 말씀을 많이 들었고요. 그런 소통 과정을 통해서 조합이 신뢰를 넓혀가고 그런 신뢰를 기반으로 이 엄혹한 시기에 흔들리지 않고 조합 지켜달라는 요구로 받아들였습니다.”
어떻게 소통하실지 방안이 있으시다면?
“‘조합의 힘은 조합원에게서 나온다’란 건 너무도 당연한 진리인데 집행부 일을 하다 보면 잊을 때가 있거든요. 집행부 중심으로 판단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기본 원칙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합원들을 더 많이 만나고 폭넓게 이야기를 들을 겁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지금보다 훨씬 더 소통을 강화할 생각입니다. 또, 조합 활동에 조합원들의 의사를 세심하게 반영하고, 조합원의 권익이 걸린 문제에 있어서는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취임사에서 “공영방송 MBC를 탐하는 자들의 ‘공정’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국민의 눈으로 조합이 앞장서 공정방송의 가치를 굳건히 지켜가겠다”고 하셨는데, 지금 어떤 상황으로 판단하세요?
“MBC에 대한 정권의 압박이 더 거세질 것이라고 봐요. 한상혁 방통위원장 임기가 7월까지인데, 그걸 못 기다려서 검찰이 무리수에 무리수를 거듭하는 상황이잖아요. 한 위원장이 교체되고 나면 방통위원이 정부·여당 추천 3명, 야당 추천 2명 구도가 될 것이고, 그러면 이제 MBC를 감독하는 방문진 이사진을 해임하려 들겠죠. 그 이후에 MBC 경영진을 교체하려 할 겁니다. 이 과정 하나하나가 상식적으로 보면 상당히 무리수인데, 공영방송 장악에 혈안이 돼 있는 정권이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최근 2009년 이명박 정부 당시 상황이 자주 거론되는데?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는 의도나 의지에 있어서 MB 정권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현재 집권세력 핵심들이 모두 과거 친이계 출신이잖아요. 더 하면 더 했지 약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MBC 보도의 편향성 문제도 지속적으로 들립니다.
“편향성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편향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과거 공영방송 MBC를 훼손하고 편파 왜곡 보도에 앞장섰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주장에는 자신들이 MBC를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고, 그러면서 일종의 편향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고 봅니다. 거기에는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저는 2015년부터 2017년 초까지 2년 동안 노동조합에서 뉴스 모니터링 역할을 맡았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MBC 뉴스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똑똑히 목격했고 기록했습니다. 당시 <뉴스데스크>는 오로지 ‘청와대에 유리하냐 불리하냐’가 뉴스 가치판단의 기준이었고 그러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었습니다.
촛불 집회 때는 MBC 마이크 태그 떼고 중계차를 타야 했고, 그런 상황인데도 편집회의에서는 ‘촛불 집회보다 태극기 집회를 앞세워야 하는 거 아니냐’라는 논의가 오가기까지 했습니다. 최순실을 최순실이라고 제대로 호명하지 못했던 게 <뉴스데스크>였고, 보도국장이 보도국에 비치된 민실위의 모니터 보고서를 현장에서 찢어버리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2012년 파업 종료 후 기자들 상당수를 외부로 쫓아내고 적폐 뉴스 만들기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다시 정부·여당과 결탁해 MBC 뉴스의 공정성을 들먹이고 편파 왜곡 프레임 만들려고 애쓰고 있는 겁니다.
저는 MBC 뉴스에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외부 탄압에 맞서 싸우는 것과 동시에 우리 내부의 결함을 들여다보고 고쳐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리사욕 채우기 위해 MBC를 탐하려는 자들의 ‘공정 프레임’이 아니라, 오로지 국민의 시각에서 내부를 들여다볼 생각입니다. 보편적인 시각과 상식적인 눈으로,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뉴스를 봤을 때 ‘이것은 문제’라고 하는 지적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조합이 내부 감시 역할을 충실히 해나갈 것입니다.”
사장 선임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셨던데 어떤 문제인 거죠?
“사장 선임 전 과정에 내부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 겁니다. 이번 사장 선임 과정에 처음으로 156명의 시민평가단이 참여했다는 점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MBC의 상황이나 특성에 대해 시민평가단 한분 한분의 이해가 다 다를 수 있는 상황에서, 단 한 차례 후보들의 정책 발표나 질의응답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였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전문적인 검증과 평가 과정에서 내부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는 말씀을 드린 겁니다.”
직전 사장 선임할 때에는 내부 구성원 목소리가 반영되었나요?
“2017년 최승호 사장이 선임될 때는 후보자들이 시청자와 MBC 구성원들 앞에서 MBC의 미래에 대한 전망과 계획을 밝혔고, 이에 대한 질의응답 과정이 온라인으로 모두 생중계됐습니다.
2020년 전임 박성제 사장이 선임될 때는 시민평가단의 정책토론회에 사내 직능단체로부터 취합한 공개 질의가 포함됐습니다. 당시 코로나19로 시민평가단이 모이지 못해 정책토론회가 취소되긴 했지만, 방문진 이사진이 최종 면접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공개 질의 내용을 후보자들에게 대신 질문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번에는 시민평가단이 처음으로 참여했다는 진일보한 면이 있었지만, 오히려 구성원들의 목소리는 배제된 측면이 있었던 거죠. 앞으로 사장을 선임할 때는 시민평가단과 내부 구성원들, 방문진 이사진의 평가가 일정 비율로 반영되는 방안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성제 사장 당시 메가MBC 추진단이 있었잖아요. 그러나 신임 안 사장이 이를 해체해서 지역사 반발이 있는 것 같은데?
“지금 시점에서 메가MBC 추진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판단하고, 추진단 해체를 결정한 것 같습니다. 조합이 문제 삼은 건 그 과정에서 당사자인 지역 구성원들과의 소통이 없었다는 부분입니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안 사장도 소통 부족을 인정했고요. 대신 지역사와의 협력 확대에 대한 의지를 밝히고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부분이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보면서 이후 평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2년 MBC본부를 어떻게 이끌어갈 생각이신지요?
“상황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아요. 대략의 그림은 그려지는데 중간중간 변수들이 너무 많습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내부적으로는 조합원과의 소통 확대를 통해 조직력을 더 키워나갈 생각이고요. 외부에서 들이닥칠 공격에는 흔들리지 않고 맞설 겁니다.
저는 현 정부가 오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MBC를 장악하려는 시도가 잠시 성공할지는 몰라도 결국에는 국민들이 그 평가를 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잠깐 목적을 이룰 수는 있어도 결국에는 그 대가를 치를 겁니다. 공영방송 장악의 헛된 꿈을 제발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정권과의 투쟁, 공영방송 장악 시도에 대한 저항은 물론, 내부적으로는 구성원들이 더 좋은 보도, 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의 효능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처럼, 국민들도 공영방송의 효능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것이 기본적인 역할일 것이고요. 조합이 조합원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듯이 공영방송은 국민의 신뢰를 기반으로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신뢰를 쌓을 수 있도록 내부에서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열심히 해나가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구체적인 계획 듣고 싶습니다.
“앞으로 집행부 회의나 대의원회를 통해 그런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고자 합니다. 지금은 큰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단계라 계획 하나하나를 말씀드리기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공영방송 MBC의 주인은 국민인 만큼, 국민들께서 MBC에 더 관심 가져주시고 애정 어린 조언과 따끔한 비판 많이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희도 각자의 자리에서 국민들의 신뢰를 더 쌓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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