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이사진에 대해 해임을 반복했던 방통위의 ‘방송장악’ 폭주에 제동이 걸렸다. 서울행정법원은 오늘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제기한 해임처분 집행정지 소송에서 방통위의 해임처분 효력을 정지한다고 결정했다. 사필귀정(事必歸正),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판단이다. 동시에 법과 절차 모두 무시하고, 무리하게 해임을 밀어붙였던 방통위의 폭거가 법적으로 명백히 저지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 결정이다.
방통위 ‘정치적’ 해임에 법원 ‘법적’ 제동… “사필귀정”
방통위가 내세운 권태선 이사장 해임 사유는 무려 10가지에 달했다. 대부분 ‘해임’이란 결론을 내려놓고, 억지로 꿰다 맞춘 것들이었다. 합의체인 방문진이 독립적으로 심의·의결한 내용에 대해 권 이사장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부터, 심지어 권 이사장이 취임하기 전에 발생한 일들까지 해임 사유에 포함됐다. 방통위든, 감사원이든 조사 결과도 나오기 전에, 제대로 된 조사도 이뤄지기 전에 해임을 강행한 절차적 황당함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권 이사장 해임 처분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탄원에 무려 1,300여 명의 MBC 구성원들이 참여했을 정도이다.
법원의 판단은 단호했다. 행정의 안정성을 이유로 행정처분의 집행정지 판단이 통상 보수적이란 점을 감안하면, 법원의 이번 결정은 방통위의 해임 처분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것이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줬다. 법원은 방통위가 제기한 해임 사유들이 명확히 소명되지 않아 권 이사장이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방통위의 주장대로 권 이사장의 해임처분 집행을 정지한다고 하더라도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원칙적으로 임기를 보장하되 직무수행에 장해가 될 객관적인 상황이 발생한 경우에 한해 해임을 허용하는 것이 방문진법이 추구하는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 보장이라는 공익에 더 부합한다면서, 방통위가 주장하는 공익상 필요가 권 이사장이 입는 손해를 희생하더라도 옹호하여야 할 만큼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즉, 방통위가 내세우는 해임 사유에 명확한 근거가 없으며, 권 이사장을 무리하게 해임하는 것이 되레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 보장이라는 공익을 해친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기중 이사 해임 청문 강행…방송장악 당장 중단하라
법원의 이번 판결로 권 이사장은 방문진 이사장으로 복귀하게 됐다. 방통위가 권 이사장 자리에 내리꽂은 김성근 보궐이사에 대한 임명처분 집행정지 신청은 13일 심문기일을 앞두고 있다. 이에 대한 법원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 9명으로 규정된 방문진 이사가 10명이 되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졌다. 방통위가 오히려 방문진의 업무를 방해하고 불필요한 혼란을 야기한 것이다. 최소한의 양식이 있다면 김성근 씨는 지금이라도 즉각 사퇴하는 것이 옳다.
방통위는 오늘 김기중 방문진 이사에 대한 해임 청문을 강행했다. 법원의 이번 결정을 고려한다면 해임 의결을 당연히 중단해야 할 테지만, 방송장악에 혈안이 된 윤석열 정권의 무도함을 볼 때 결정 취지를 수용할 지 미지수이다. 권 이사장과 마찬가지로 해임처분 집행정지가 될 걸 감수하면서까지 김 이사를 해임하고 곧바로 보궐이사를 임명할 것이란 얘기도 들린다. 또한 지금보다 더한 광기(狂氣)로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방송장악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여기에 더해 이동관 방통위는 공영방송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심지어 방송사를 퇴출하려는 막가파식 행보까지 보이고 있다. 경영진 교체를 통한 방송장악을 넘어서 직접 방송을 통제하고, 인허가를 무기로 마음에 들지 않는 방송사의 존립 기반마저 흔들겠다는 것이다. 방통위의 권한을 넘어선 반민주적 불법행위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윤석열 정권과 이동관 방통위는 지금이라도 비상식적, 비이성적 방송장악을 중단하라. 말로만 법치를 외치면서 오로지 권력의 힘으로 법을 짓밟고 방송을 장악하려는 행위를 당장 멈추라. 불법적 폭압의 정도가 심해질수록 법적, 역사적 심판은 더욱 가혹해질 수밖에 없다.
2023년 9월 11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