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진을 또다시 일베들의 놀이터로 만들 셈인가
오로지 방송 장악에 혈안이 된 방송통신위원회의 폭주가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방통위는 오늘 오전 비공개 전체회의를 열고, 방송문화진흥회 보궐이사로 차기환을 임명했다. 임정환 이사가 사퇴한 지 불과 이틀 만에, 법과 절차, 상식과 전례를 모두 짓밟은 막가파식 폭거이다. 더욱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방문진 이사를 두 번씩이나 연임하면서 공영방송 파괴의 주범이었던 차기환을 임명한 것은, MBC를 또 다시 암흑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망가뜨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극우, 일베 문제 인사…MBC 암흑기 주도한 장본인
차기환이 누구인가. 당시 한나라당 추천으로 지난 2009년부터 2015년까지 방문진 이사를 연임하고, 곧 바로 KBS 이사 자리까지, 유례없는 ‘공영방송 이사 3연임’을 누렸던 대표적인 극우 편향 인사다. 철저히 정권의 하수인으로 방문진을 정치적 이전투구의 장으로 전락시키고, MBC의 암흑기를 주도했던 장본인이다. 김재철 사장의 전횡을 전폭 지원하면서, MBC의 경영은 물론 편성과 보도, 제작 등에 끊임없이 관여해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철저히 파괴했다. 언론의 자유와 공정방송을 외치는 MBC 구성원들에 대한 부당한 탄압에 동조하고, 전례 없는 170일 파업을 야기했다. 차기환은 고영주, 김광동 등과 함께 MBC 구성원에게 다시는 듣고 싶지도,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이름이다.
특히나 문제가 되는 건, 그 때나 지금이나 몰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극우 성향을 서슴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차기환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북한군이 남파됐다는 허위 주장을 반복하고, 고 조비오 신부의 헬기사격 증언에 대해서도 ‘유언비어’라는 극우사이트 ‘일베’ 글을 공유하면서 “5·18에 대한 진상에 대하여 국민들의 오해, 과장, 왜곡이 너무 많다. 이런 진실을 향한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고 적었다. “계엄군은 시위대를 조준 사격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시위대가 경찰과 군경을 위협했다”고 했고, 계엄군 집단 발포로 숨진 피해자에 대해서도 시민에 의해 희생됐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이 같은 역사 왜곡을 자산 삼아, 2019년 자유한국당 추천으로 5.18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됐고, 올해에는 윤석열 대통령 추천으로 제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위원 자리까지 꿰찼다.
2015년 당시 새누리당 추천으로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이 된 차기환은 극우 행보의 극단을 보여줬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아니라, 오직 유가족을 폄훼하고 특조위 활동을 방해하는 데 앞장섰다. 유민아빠 김영오씨의 단식을 비하하는 ‘일베’ 글을 자신의 SNS에 올리고,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로 간 유가족을 향해서는 ‘이런 유가족들의 행태는 정말 싫다’고 비난했다. 특조위를 ‘세금 도둑’, ‘정치집단’ 등으로 비하하고,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집요하게 방해했으며, ‘특조위 청산백서 운영보고서’를 집필하는 등의 수법으로 1기 세월호 특조위를 강제 해산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런 행적 때문에 지난 2021년 차기환이 방문진 이사에 지원했을 때,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그리고 5.18단체들은 차기환의 이사 지원을 규탄하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이 외에도 2015년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숨진 백남기 농민 사건과 관련해 ‘백 씨가 물대포를 맞기 전 ‘빨간 우의’를 입은 남성 등에게 먼저 폭행을 당해 죽음에 이르렀다‘는 극우 커뮤니티의 음모론을 사실인 것처럼 유포하기도 했다. 또 KBS 이사였던 지난 2016년, 국정 농단 사건과 관련해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 변호를 맡으면서, 태블릿 PC 입수 경위를 문제 삼으며 KBS 이사회에서 관련 보도를 종용하기도 하는 등 차기환의 비상식적 행보는 넘쳐 난다.
절차적 정당성도 없는 임명 강행…당장 철회하라
이런 문제 인사를 방통위가 마치 007 작전하듯 임명한 것은 절차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방통위는 지난 7일 임정환 이사가 사퇴하자, 당일 오후 5시 넘어 보궐이사 임명 의결안을 기습적으로 상정했다. 이는 48시간 전에 회의 일시, 안건 등을 통보해야 한다는 방통위 법과 운영 규칙을 스스로 짓밟은 것이다. 특히 통상적으로 이뤄진 후보 공모와 심사, 검증 절차도 모두 없앤 것은, 현재의 비정상적인 구조를 십분 활용해 방송 장악을 마무리하겠다는 음모 외에는 설명되지 않는다. 김효재 방통위원장 직무대행과 김현 방통위원의 임기가 끝나는 23일 전에, 온갖 무리수를 둬서라도 공영방송 이사진 구조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동관 손을 더럽히지 않고, 방송 장악이 수월하도록 꽃길만 깔아주겠다는 속셈이다.
방문진 이사는 MBC가 공영방송으로서 공적 책임을 실현할 수 있도록 관리, 감독하는 중요한 직책이다. 더불어 방문진법에는 민주적이며 공정하고 건전한 방송문화의 진흥과 공공복지 향상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게 방문진 설립 목적으로 규정돼 있다. 과거 MBC를 비롯한 공영방송 이사로서의 이력, 극우 편향적 행보 등을 고려하면, 차기환은 방문진 이사가 절대 되어서는 안 될 인사의 표본이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동문이자, MB정부 당시 이동관과 호흡을 맞춰 공영방송 장악에 앞장섰던 차기환을 방문진 이사로 내리꽂은 것은, 과거 MBC 장악을 그대로 반복하겠다는, 아니 더 철저히 무너뜨리겠다는 의지로밖에 볼 수 없다.
윤석열 정권과 방통위는 지금이라도 광기(狂氣)를 내려놓고 이성을 찾으라. 법과 절차, 전례를 무시한 차기환 임명을 당장 철회하라.
2023년 8월 9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