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창대했으나 결과는 미약을 넘어 참담하다. 바로 원MBC 추진 과정을 일컫는 직설적이고 정확한 표현이다. 2년 전 회사는 선제적으로 MBC가 나아가야 할 방향타를 제시하며 원MBC라는 담론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고 그에 맞춰 노사가 정책의 연착륙과 현실화를 위해 매진했었다. 그러나 제안을 했던 회사는 신임 사장 취임과 함께 핵심 기구인 메가MBC 추진단을 해체했고 신임 사장이 바로 추진단의 책임자였다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기억하고 기록해야 하기에 과정을 되짚어보자. 박성제 전 사장과 안형준 전 단장은 지역사를 순회하며 충만한 희망을 선사하고 원MBC의 당위성을 설파했다. 강제적 광역화가 아닌 자율적 통합을 통해 경쟁력이 강화되는 것은 물론 이 과정에서 부당한 인적 개편은 없을 것이라며 지역 구성원들을 안심시켰다. 또 부쩍 메말라가는 지역사의 제작 여건까지 언급하며 지역 콘텐츠의 질적 향상이란 화두까지 던지면서 오랜만에 가슴 뛰는 순간을 맞기도 했다. 특히 서울과 지역의 이질감을 동질감으로 바꾸겠다며 자신을 믿어달라고 했던 외침에는 결연함까지 담겨 있었다. 이에 맞춰 강원권과 제주권 등 몇몇 지역사는 노사 신뢰를 바탕으로 원MBC의 첫걸음이 될 찬반 투표까지 진행하면서 공감대 형성에 박차를 가해 왔다. 물론 여물지 않은 정책을 토대로 지역 구성원들을 설득하는 것조차 오롯이 노동조합의 몫이었고 최근까지도 불명확한 추진 과정을 재차 확인하고 지역 구성원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본사를 향한 불신의 늪은 깊이를 더해갔다.
내심 안형준 전 단장의 사장 출마를 목도하며 뒤처지고 가라앉았던 원MBC 전략에 신동력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감은 추진단 해체와 함께 여지없이 나동그라졌다. 안 전 단장은 사장 출마를 앞두고 메가MBC 추진단장이란 경력을 공공연히 알리는 것과 다르게 사장이 되자마자 정책의 소통과 조율을 맡고 있던 추진단 해체를 일방적 통보로 갈음했기 때문이다. 미덥지 않았던 원MBC의 첫걸음이야 지역 순회 설명회를 통해 수긍한다고 하더라도 추진단 해체마저 사전협의 없이 일방통행으로 마무리한다면 그동안 추진단과 본사 경영진에게 보냈던 지역 구성원들의 신뢰를 사탕발림으로 저버렸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는 당당하게 요구한다. 이번 추진단 해체와 관련해 안형준 사장이 직접 해명하라. 그것이 바로 함께 꿈꿔왔던 원MBC를 완수하기 위한 의지의 표명이며 소통의 문을 열어놓겠다는 안 사장의 포부가 임기 초부터 희석되지 않을 특단의 조치다.
우리는 또, 요구한다. 지역사와 관련된 정책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 추진단장 때부터 지역사의 실정을 함께 고민해왔다고 자부한다면 어설픈 전략과 대책으로 또다시 지역사를 혼란에 빠뜨리지 말고 원MBC를 보증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당연하다.
취임사를 통해 지역성이 곧 공공성이라며 자부한 바와 같이 지역사가 공영방송의 뼈대를 유지하는 버팀목인 것을 각인하고 자신의 경영철학에 불통(不通)이란 불순물이 스며들지 않기를 간곡히 바란다.
2023년 4월 5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16개 지부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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