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과 비판마저 징계하려 하는가
공영방송 MBC에서 또다시 상식 밖의 무더기 징계가 예고되고 있다. 사측은 모레(26일) PD와 기자 6명의 징계를 위한 인사위원회를 열기로 했다. 대상자는 송일준 PD와 김희웅, 이호찬, 이덕영, 곽동건, 전예지 기자이다. 비위 행위를 한 것도 아니다. 한결같이 MBC의 정상화를 위한 문제를 제기했다가 인사위에 회부된 것이다. 내부 고발을 위한 비판과 반성의 입마저 틀어막겠다는 의도 말고는 사측의 무리수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법원에서 제동 당한 논리 또다시 들고 나와
사측이 보도국 신입 공채 막내 기자 3명을 인사위에 회부한 이유는 올해 초 이들이 인터넷에 올린 “MBC 막내기자의 반성문”이라는 제목의 동영상 때문이다. 동영상은 촛불집회에서 욕설을 듣고 외면당하는 MBC 뉴스의 현실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해직과 부당전보로 초토화된 보도부문의 실상을 시청자들에게 알렸다. 이 영상의 결론은 MBC가 다시 정상화될 수 있도록 MBC를 포기하지 말아 달라는 호소였다.
그런데 사측은 4개월 가까이 지나 갑자기 이들이 회사의 ‘소셜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어겼다고 문제를 삼았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를 핑계삼은 회사의 무리한 징계가 법원의 제동을 받았던 일이 불과 얼마 전이다. ‘유배지’로 전보됐던 권성민 PD가 인터넷 게시판과 페이스북 등에 MBC의 상황을 풍자한 만화로 해고와 정직을 당했다가 무효 판결을 받은 사건이다.
당시 법원은 권 PD의 게시물이 “방송국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말고 계속 관심을 가져 달라는 내용”이라며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 또는 여론 형성을 위하여 내부 구성원의 피고(MBC)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을 어느 정도 허용할 필요가 있다는 점”과 “소셜미디어 네트워크는 업무와 무관한 개인영역”이라는 점을 근거로 징계가 재량권을 일탈 남용하여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에서 패소한 사측이 또다시 동일한 ‘억지 논리’로 징계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송일준 PD에 대한 징계 시도 역시 이미 법원으로부터 위법하다고 판단 받은 기존 징계 사례와 판박이다. 사측은 송 PD의 인사위 회부 사유로 그가 지난달 모 언론과 인터뷰 한 사실을 제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정국을 다룰 예정이었던 ‘탄핵’ 다큐멘터리가 불방된 MBC의 상황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이는 MBC 피디협회장이라는 지위에서 협회 소속 피디와 관련된 사안을 언급한 것으로 지극히 당연한 문제 제기였다. 하지만 사측은 이 인터뷰가 사전 신고를 하지 않은 채 진행됐고, 회사와 임직원을 근거 없이 비방해 품위 유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인사위 회부 이유를 밝혔다.
이는 신고 없이 외부 매체와 인터뷰 했다는 이유로 <시사매거진 2580> 소속 기자 2명에게 3개월 정직 징계를 내린 상황을 떠오르게 한다. 사측은 지난 2012년 내렸던 ‘정직 3개월’의 징계가 대법원에서 무효 판결을 받자, 3년이나 지나 이들에게 다시 ‘정직 1개월’의 재징계를 결정했다. 하지만 최근 2심에서 또다시 무효 판결을 받은 상태이다. 판결 이유는 “공정하고 중립적인 방송보도를 촉구하는 의도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심지어 재판부는 “징계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것이고 위법의 정도가 중대하고 명백하다”고 적시하기까지 했다.
내부 문제 제기도 징계사유로 삼아
<뉴스데스크> 인터뷰 조작 의혹을 제기한 김희웅, 이호찬 기자에 대한 인사위원회 회부 이유는 더욱 황당하다. 지난해 4월에서 5월 사이 특정 기자가 뉴스데스크에 사용하기 위해 한 음성 인터뷰 3개가 목소리는 비슷한데 각각 다른 직업이나 배경을 가진 사람으로 저장돼 있었다. 그것도 딱 방송에 쓸 부분만 편집돼 있었다. 두 기자는 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을 뿐이다. 그런데 사측은 오히려 보도국 시스템을 이용해 문제가 된 음성 파일을 청취한 것은 업무와 상관없는 행위이고, 이를 바탕으로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에 사규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가 된 3개의 인터뷰 대상자는 각각 아이폰 수리 요청 고객, 대형마트 납품업체 직원, 건설사 관계자였다. 그런데 성문 분석 결과 이 3명의 인터뷰이가 실제로는 동일인일 확률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왔다. 공영방송사로서 이런 의혹에 대해 검증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사측은 그러나 해당 인터뷰이가 정말 아이폰 사용자인지, 납품업체 직원은 맞는지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자의적이고 선별적인 방식의 검증 결과만으로 사안을 축소하고 은폐하기에 급급했다.
언론의 자유를 틀어막는 언론사 MBC
‘내부고발자’ 보호에 앞장서야 할 언론사가 정작 ‘내부의 고발’에 입을 틀어막으려 하고 있다.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회복시키자는 외부의 목소리는 ‘언론 장악 시도’라며 매도하더니 MBC 경영진은 정작 언론사 내부에서 헌법에도 보장된 인간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마저 막겠다는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더구나 징계 재량권이 남용됐다고 법원이 판단한 유사 사안에 대해 내부 구성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하는 것이다. 이 무리한 징계는 백종문 부사장과 이은우 경영본부장이 밀어붙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동조합은 이번 징계를 기획하고 추진하는 장본인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다. 또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MBC 구성원들의 입을 부당하게 틀어막는데 악용되는 사규를 철폐해 나갈 것이다.
2017년 4월 24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