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대체인력에 면죄부, 경영진의 책임 회피를 규탄한다!
과거 청산 없이 “신뢰 회복” 가능한가?
MBC 사측이 어제 오후 열린 인사위원회 결과를 공개했다. 이 인사위원회는 2012년 파업 기간 중 김재철 전 사장 등 전임 경영진이 채용한 55명의 불법 대체인력에 대해 전원 고용계약을 종료할 것을 권고한 감사 결과에 따라, 이들의 처리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 열렸다. 결과적으로 사측은 감사의 권고를 거부했다. 불법 대체인력들과의 근로계약을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회사의 이같은 결정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방송장악에 맞서 노동조합은 2012년 1월부터 7월까지 170일 동안 파업으로 싸웠다. 이 파업은 우리 2천 조합원이 노동자로서 생계 수단을 포기하고 언론 자유와 방송 독립이라는 헌법 가치와 방송인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싸움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과 그 방송 부역자들은 해고 8명, 징계 100여 명으로 탄압했고, 쫓겨난 기자·피디들을 대체하기 위해 파업 기간에만 93명 등 몇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채용을 강행했다. “MBC의 DNA를 바꾸겠다”는 의도였다.
이렇게 채용된 인력들 중 일부는 이후 세월호 참사,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등 주요 국면에서 편파, 왜곡보도에 동원되거나 가담했고, MBC의 신뢰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법적으로도 파업기간 채용된 자들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금지하고 있는 대체인력에 해당한다. 이는 2012년 파업을 둘러싼 해고무효, 업무방해,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이 일관되게 적법한 파업이라는 판결을 내리며 지적한 지점이다. 현 경영진은 이 불법 채용을 묵인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현 최승호 경영진은 지난 7년 간 썩을 대로 썩은 MBC의 적폐를 낱낱이 청산하고 잃어버린 국민 신뢰를 회복하라는 소명을 지니고 출범했다. 언론 적폐 청산과 MBC의 개혁은 추락하던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한 촛불 시민들의 명령이었다. 그러나 현 경영진의 적폐 청산은 느리고 답답했다. 방송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인한 경영위기에 준비 없이 허둥대면서 적폐 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지속적으로 흔들렸다. 감사가 근로계약 종료를 권고한 55명 가운데 상당수는 업무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파업 대체인력임을 본인들이 충분히 인식했으면서도 채용에 응해 방송장악에 부역한 자들이다. 이 인력들을 과감하게 도려내는 것은 적폐청산의 가장 기본적인 과제였지만, 현 경영진은 결국 이 기본 과제마저도 책임을 회피하고 시청자와 구성원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이같은 잘못된 결정의 책임은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문화진흥회, 정치권에게도 있다. 최근 방송통신위원들과 MBC 경영진이 만난 자리에서 한 방통위원은 “구조개혁 한다면서 시용기자들만 내보내는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며 불법 대체인력을 내보내지 말라는 신호를 노골적으로 전달했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장에서는 여권 실세 의원이 “시용기자들 역시 희생자들이며, MBC 경영진이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보듬어야 한다”는 어이없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 당시 국정감사에 출석해 이런 주문을 받은 사람은 김상균 방문진 이사장이었다. 김상균 이사장은 이에 앞서 8월 한 인터뷰에서 “적폐청산도 적자를 빨리 해소하는 범위 안에서 하라”면서 적폐 인사에 대한 인사위원회의 해고 결정을 최승호 사장이 정직으로 감경한 것을 칭찬했다. 이 모든 발언들이 현 경영진에게 주는 메시지는 하나였다. “적폐청산 그만하고 적자 해소나 신경쓰라”는 것이었다. “과거는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주장은 익숙하다. 식민지배, 나치즘, 군사독재를 옹호하는 바로 그 논리이다.
노동조합은 MBC가 하루 빨리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를 그 누구보다 간절히 원한다. MBC가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진취적인 도전으로 공영방송의 새로운 롤 모델을 만들어가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원한다. 2천 조합원이 지금도 방송 현장에서 공정하고 용기있는 보도와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헌신을 다하고 있는 목적이 바로 그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철저한 과거 청산과 처벌을 요구한다. 방송을 짓밟고, 현장 종사자들의 제작자율성을 침해하고,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자유를 짓밟은 어두운 과거를 제대로 조명하고 청산하지 못하면서 MBC가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가? 구성원들에게 미래로 나아가는 헌신적 노력을 요구할 수 있는가? 외부의 압박에 흔들리고 법적 논란과 시비를 두려워하는 경영진, 그리고 그들로부터 면죄부를 받아든 불법 대체인력들에게 과연 “새로운 탐험”을 기대할 수 있는가?
경영진은 이 결정에 대해 “대체인력과의 고용계약을 종료할 경우 혼란이 더 커질 것이 우려됐다”고 밝혔다. 전형적인 책임 회피이다. 불법과 불의를 눈감아서는 안 된다. 한 사회의 건강성을 지키고 불법과 불의를 고발해야 할 공영방송이라면 더더욱 안 된다.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결단하고 그로 인한 일부 혼란과 논란을 감당해야 한다. 그것이 책임있는 자세이다.
경영진의 잘못된 결정은 MBC의 미래에 두고두고 무거운 짐을 남겼다. 그 짐을 떠안을 당사자는 현 경영진이 아니다. 물론 방통위도, 방문진도, 정치권도 아니다. 공영방송 MBC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우리 2천 조합원들이다. 과거청산은 끝나지 않았다. 인사위를 다시 열어 결정을 바로잡을 것을 요구한다. MBC의 잘못된 과거를 완전히 뿌리뽑을 때까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공영방송의 새로운 전망을 쟁취할 때까지 우리 MBC 조합원들은 끝까지 헌신할 것이다.
2018년 12월 27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