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가 이사 공모가 한창 진행 중이지만, 국민들은 어느 지원자가 무슨 근거로 공영방송 이사회 입성에 가까워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이번 공모절차를 시작하면서 ‘국민 검증 강화’, ‘투명한 선임절차 마련’을 강조해 왔던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방통위였다. 하지만 부적격 지원자 1차 관문 통과 소식과 더불어 방통위의 불투명한 공모 절차에 대한 지탄은 더욱 높아졌다.
우리는 수차례 이번 이사 선임 절차의 핵심 가치는 ‘국민 참여’와 ‘투명성 확보’임을 강조해왔다. 스스로의 책임은 망각한 채 밀실 속에서 정치적 셈법을 잣대로 움직였던 과거 방통위의 행태가 모든 비극의 씨앗이 돼 왔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불투명한 공모의 결과로 부적격 이사가 탄생한다면, 그 책임이 방통위에 있음을 분명히 경고한다. 방통위는 스스로 공언했던 ‘투명성 확보’가 말뿐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라. 여야 추천으로 구성된 방통위 멤버가 공영방송 이사회의 정쟁 구도를 또다시 심화시킬 경우, 방통위가 언론개혁의 우선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국회 역시 책임이 무겁다. 국회가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과정에 국민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법안을 마련했다면, 상황은 지금과는 분명 달랐을 것이다. 국민의 건강한 상식적 잣대 앞에 5.18 폄훼 논란을 빚었던 인사, 특정 정당의 대변인처럼 굴거나 특정 선거캠프에 몸을 담았던 인사들이 감히 KBS 이사에 지원을 할 수 있겠는가. 공영방송 MBC 파괴의 주범이었던 ‘극우 편향 인물’이나 이사지원서에 방송장악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인물이 방문진에 자리잡을 것을 우려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부적격 인사가 대거 지원하고, 공영방송 이사회 문턱을 넘어가는 상황을 보라. 국민의 상식과 식견이, 여야 추천으로 구성된 방통위원들의 정파적 합의보다 훨씬 건강하고 투명하다. 국회와 방통위는 비뚤어진 엘리트주의에 빠진 채 공영방송 리더 자리를 정파적으로 나눠먹지 말고, 국민에게 공영방송을 돌려주어야 한다. 명분 없이 공영방송 지배구조 정상화 입법을 지체한 국회 과방위에 부적격, 정파적 이사 탄생의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다.
누구나 바라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논의는 제껴둔 채, 보완점이 수없이 지적되는 징벌적 손배제를 졸속 추진하는 행태가 개탄스럽다. ‘취재 과정에서의 법률 위반’ 등 고의 중과실의 기준과 손해배상액 산정 기준이 논리적이지 않아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다. 무엇보다 일반 시민에게는 실익이 거의 없고, 소수의 권력 집단이 악용하기는 너무나 쉬운 독소조항이 넘쳐난다. 징벌적 손배제 도입 기본 취지에 찬성했던 이들에게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이다. 허점투성이 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키는 것을 진정 ‘언론개혁’이라 부를 수 있는가.
대의기관으로서 국회의 제1책무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이다. 허점 투성이인 징벌적 손배제 논의를 즉각 중단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 대안을 마련하라. 그리고 당장 공영방송 지배구조 정상화를 위한 입법을 마무리지어라. 입법을 지체한 국회와 불투명하게 공영방송 이사 추천 논의를 진행하는 방통위가 언론장악의 오명(汚名)을 자초하지 마라. 이는 방송장악 세력으로부터 공영방송 독립을 위해 싸운 국민과 공영방송인의 노력을 모독하는 것이다. 우리는 공영방송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대원칙 아래 똘똘 뭉쳐 모든 수단을 다해 책임을 물을 준비가 되어 있다.
2021. 8. 4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EBS, KBS 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