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MBC기자회 제작 거부 
2012년 1월, 이런 배경에서 기자회를 중심으로 전영배 보도본부장과 문철호 보도국장 경질 요구가 나옴. 29기(1995년 입사 기자) 이하 평기자 125명 가운데 불신임 108표, 신임 9표, 기권 8표라는 압도적인 결과로 불신임이 가결. 하지만 사측은 무시했고 결국 기자회는 제작거부를 결의하고 단행.

 

1월 30일 총파업 돌입 (170일 파업)
MBC 노동조합은 <공영방송 MBC 정상화를 위한 총파업>에 돌입.


2월  김재철 사장 대규모 소송 남발
김재철 사장 파업 25일 만에 회사에 첫 출근. 확대간부회의에서 파업에 강경대응할 방침 천명. 3월 7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도 출석하여, “기자 · PD 등 전 부문에 ‘임시직 채용’을 확대”하겠다고 공언. 
 

2월 10일 <김재철을 찾아라> 전단지 배포 건으로 노동조합 집행부를 명예훼손으로 첫 형사 고소한 이래 파업기간 중에만 모두 11건의 고소를 조합과 조합 집행부, 조합원들을 상대로 제기.

업무방해 고소 1건, 손해배상청구 195억 1건, 가압류 1건,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1건,
명예훼손 4건, 법인카드내역유출 정통망법 위반 2건, 차명폰 통화내역 정통망법 위반 1건 등

- 27일 회사가 조합 집행부 16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형사고소.

- 28일 회사가 <김재철 사장의 법인카드 사용내역 공개> 책임을 물어 노동조합 집행부를 명예훼손으로 형사고소.

- 29일 박성호 기자회장 해고. 이후 정직 6개월로 감경됐다가 다시 재해고.
- 29일 보직을 사퇴하고 파업에 참여한 김세용 · 최일구 앵커, 정형일 한정우 민병우 부장 등도 정직 이상 중징계.

 

3월
- 5일 조합과 조합 집행부를 상대로 33억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

- 이후 손해배상 요구금액이 195억으로 증액. 

- 이용마 홍보국장 해고.

- 12일 김재철 사장은 MBC 노동조합과 집행부 16명을 대상으로 33억 손해배상 관련 부동산과 동산의 <가압류>까지 신청

 


4월

- 3일 정영하 위원장과 강지웅 사무처장 해고.
- 보직 사퇴 후 파업 동참한 4명의 보직간부들 정직 이상 중징계.

- 9일 조합 집행부 등 16명에게 정직 이상의 무더기 징계.


5월

- 30일 박성호 기자회장, 최형문 기자회 총무, 왕종명 기자가 중징계.

- 박성호 기자회장은 재해고, 최형문 기자 정직 6개월, 왕종명 기자 정직 1개월.


6월
- 1일 파업 참여 조합원들 35명이 1차로 대기발령.
- (이들은 파업이 끝난 후에도 업무복귀를 못 하고 자택 대기발령상태였다가,

- 8월 17일 이 중 16명은 <교육발령>을 추가로 받아 11월 말까지 업무복귀가 차단됨.)

- 11일 파업 참여 조합원들 34명 2차 대기발령. (이 중 11명이 해고와 정직의 중징계를 당했고 나머지는 자택 대기발령)

- 20일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 해고. 그 외 9명도 정직 이상 중징계.

① 2012년 파업 징계자 통계(서울 본사 징계자 총 98명)
해고 6명 (정영하 강지웅 이용마 최승호 박성제 박성호)
정직 38명 (정직 6개월 4명, 정직 3개월 8명, 정직 2개월 17명, 정직 1개월 9명)
대기발령 54명

 

② 2012년 파업 징계자 통계(전국 18개 지역사 징계자 총 57명)
정직 21명 (정직 5개월 1명, 정직 4개월 13명, 정직 3개월 2명, 정직 2개월 3명, 정직 1개월 2명)
감봉 11명 (감봉 6개월 2명, 감봉 4개월 1명, 감봉 2개월 1명, 감봉 1개월 7명)
근신 25명 (근신 15일 15명, 근신 10일 5명, 근신 7일 5명)

 

7월
파업 잠정중단과 업무복귀

여야 개원 합의문
"여야는 8월 초 구성될 새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가 방송의 공적 책임과 노사관계에 대한 신속한 정상화를 위해 노사 양측 요구를 합리적 경영 판단 및 법 상식과 순리에 따라 조정, 처리하도록 협조하며, 이를 위해 언론관련 청문회가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에서 개최되도록 노력한다.”

MBC 노동조합은 여야 개원합의문의 정신을 존중하고 김재철 사장의 거취문제는 이미 결정됐다는 판단으로 파업 잠정중단과 업무복귀 절차를 밟기 시작.
7월 9일 MBC 노동조합은 파업 잠정중단과 업무복귀 관련해 조합원들의 여론을 본격적으로 수렴. 7월 17일 MBC 노동조합은 파업잠정중단과 업무복귀를 선언. 7월 18일 09시부로 업무복귀.

 

계속되는 탄압

부당 전보 인사(보복 인사)
회사는 업무복귀가 선언된 7월 17일 밤 10시경 대규모 인사발령을 냄. 이 중 47명의 파업참여 조합원들이 자신의 직무와 상관없는 부서로 전보발령.

보복인사의 대상은, 기자가 카메라기자 3명 포함해서 24명. PD가 14명. 이 중엔 올림픽 방송을 앞둔 중차대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스포츠제작 PD 4명도 포함. 역시 올림픽방송을 앞둔 중차대한 시기에 당장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훈련된 아나운서들도 4명이 직무와는 관계없는 부서로 발령을 받음. 이외도 경영부문 2명, 기술부문 1명, 컴퓨터그래픽과 디자인 담당 2명 등이 직무와 관계없는 부서로 발령받음.

이들이 발령을 받은 곳은,

- 용인드라미아 개발단 9명. 용인드라미아 개발단은 작년에 PD수첩 이우환 PD가 보복인사를 받았던 곳으로, MBC 드라마 제작을 위한 세트장이 소재한 곳.

 

- 경인지사 14명. 인천이 4명, 수원이 4명, 성남용인지역이 3명, 고양의정부지역이 1명. 경인지사도 MBC 프로그램과 이벤트 기획을 이용해 수도권의 자치단체들에서 협찬을 따 내는 사업부서.

 

- 미래전략실 8명. 미래전략실은 이번 대규모인사를 위해 급조한 조직. 실제로 인사발령 난 구성원들이 사무실이 준비돼 있지 않아 출근을 못 할 정도.


- 신사옥건설국 5명. 현재 상암동 신사옥 건설을 위한 건축담당부서. 이 곳도 기자 PD들의 직무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곳.


- 사회공헌실 5명. 역시 취재와 제작과는 무관한 부서입니다.


- 중부권취재센터 3명. 충북 오송역에 사무실을 급조해서 만듬.

 

부당 전보 인사의 목적은 ‘격리와 차단’
이들 부서들의 특징은 모두 여의도 본사에 소재하지 않았다는 것. 사측이 보기에 눈엣 가시같은 조합원들을 일단 격리시키기 위한 조치에 다름 아님. 무더기 징계와 대기발령에 뒤이어 47명의 조합원들을 외곽에 격리조치한 것임. 

복수심으로 올림픽 방송마저 파행으로 이끌어
김재철 사장은 임박한 올림픽 방송에, 파업 참여 조합원들을 철저히 배제. 결과적으로 MBC 올림픽 방송이 수준 이하의 방송을 하게 된 것도 다 김재철 사장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음.  


뉴스의 전면에 나선 ‘시용(試用)’ 기자들
보도국 내부 인사에서도 민감한 시사 현안들을 다루는 정치부, 사회1부 등에서 파업 참여 조합원들은 철저히 배제. 보도국 기자들은 징계, 대기발령, 보복인사 등으로 수십 명의 기자들이 현업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음. 대신 대체인력으로 투입된 20여명의 시용 기자들과 계약직 기자들이 빈자리를 메꾸고 있음. 이들의 경우 상부의 지시를 거역할 수 없고 시키는 대로만 해야하는 처지라 <공정방송>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음.  


PD수첩은 개점휴업 상태
PD수첩을 제작했던 시사교양국 PD들도 20명에 가까운 PD들이 징계, 대기발령, 보복인사로 현업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음. PD수첩의 경우 최근에는 PD수첩 제작에 참여하고 있던 작가 6명을 대량 해고시켜서 사회적 논란을 빚고 있음.
파업이 끝나고 빨리 프로그램을 정상화시켜도 모자랄 판에 회사가 나서서 프로그램 정상화를 방해하고 있는 형국. MBC 노동조합은 회사가 PD수첩 2580같은 시사 프로그램과 뉴스 프로그램의 정상화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키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음.  


145명이 아직도 미(未) 업무복귀 중
현재 MBC 본사의 경우 44명이 해고와 정직 등의 이유로, 54명이 대기발령으로, 47명이 부당전보인사로 원래 업무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음. 145명의 역량 있는 언론인들이 자신의 직무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는 것임. 그 공백을 회사는 ‘시용(試用)’같은 임시 인력으로 메꾸려 하고 있음.  


‘새 술은 새 부대에(?)’ MBC 물갈이 음모
 8월 13일 임원회의 석상에서 김재철 사장은 시용으로 채용한 인력들을 조속히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라고 지시. 그리고 시용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된 만큼 잉여인력들을 명예퇴직 등의 방법을 써서 MBC에서 쫓아내라고 말함. 8월 14일에는 올림픽 중계로 보복인사가 나지 않았던 기술 부문에서 대규모 인사발령이 남. 30명가량의 파업 참여 조합원 엔지니어들이 원래 자신이 복무하고 있던 부서에서 쫓겨나 다른 부서로 전보됨.  부서별로 3명씩 할당을 했다는 흉흉한 소문마저 돌고 있는 지경. 


MBC의 운명은 벼랑 끝 상황
이런 파행과 김재철 사장의 몽니가 계속된다면 MBC는 더 이상 제대로 된 방송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도래할 것임. 어쩌면 김재철 사장이 공공연하게 천명했던 바와 같이 “MBC의 DNA를 바꾸는” 작업이 정권 차원의 음모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답답할 뿐임.
MBC 노동조합이 여야 개원합의문에 신뢰를 보내고 업무에 복귀한 지 한 달여.
계속되는 사측의 도발과 상처입는 조합원들이 점점 더 늘고 있음. MBC 노동조합의 인내도 점점 한계에 도달.

2011년

1월  <단체협약> 무단 해지
1월  인사평가 최하등급인 <R 등급>을 강제할당. 
1월  조합원 설문조사>에서 ‘김재철 사장의 연임’에 구성원의 92.4%가 반대. 
            
2월  김재철 사장 연임 확정(2014년 2월까지 임기 보장) 
2월  9기 집행부(정영하 위원장, 정대균 수석부위원장) 출범  

 

3월  PD수첩 PD 6명 퇴출
3월  PD수첩 <MB 무릎기도 사건> 취재 중단 지시.
3월  지시에 저항한 PD는 시사  교양국에서 퇴출됨.

 

4월  김재철 사장, 김미화씨(라디오 <세계는 그리고 지금은> 진행자) 사퇴 요구
4월  김미화씨 자진사퇴  
  
5월  PD수첩 이우환 · 한학수 PD 부당 전보 인사
5월  시사평론가 김종배씨 <시선집중> 강제하차
5월  PD수첩 말살 기도와 라디오 본부 MC 퇴출 등을 항의하는 농성.

 

7월  <시선집중> 출연 예정이었던 김여진씨 퇴출
7월  김미화씨에서 시작된 라디오 MC와 출연자 강제퇴출은
7월  김종배 · 김여진 · 윤도현 ·김어준씨에게 까지 미침
     
      <단체협약> 해지
7월  - 1월 14일 <단체협약> 무단해지 선언이 있은 후 6개월 경과한 후 정식 발효.

7월  MBC에 언론사 초유의 무단협 상황이 시작. MBC 노동조합은 쟁의행위 준비.

7월  - 26일 김재철 사장 사표 소동
7월  김재철 사장이 임원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방송문화진흥회에 사표 제출.
7월  8월 1일 김재철 사장 방송문화진흥회에 출석 사과한 후 사표 철회. 방송문화진흥회 김재철 사장 재선임.


8월  MBC 노동조합 파업 결의
8월  김재철 사장의 재선임을 인정할 수 없음을 천명하고 김재철 사장 출근저지 투쟁 시작.
8월  8월 4일부터 파업 찬반투표 시작 (2010 임단협 쟁취와 공영방송 MBC 공정성 회복을 위한 파업투쟁)

 8월  ~ 8월 18일 총파업 78%의 찬성률(투표율 91.8%)로 가결.


9월  PD수첩 광우병 보도 제작진 징계 및 사과방송
9월 2일 PD수첩 광우병 보도 명예훼손 관련 대법원 민사 형사소송 무죄 판결.
하지만 9월 5일 김재철 사장은 PD수첩 광우병 보도 관련 사과 방송을 하고 사과문을 일간지에 게재하는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하더니, PD수첩 제작진들을 정직을 포함한 중징계에 처함. 


극적인 <단체협약 체결>과 파업 철회
단체협약을 둘러싼 협상이 진척이 없자, 9월 15일 MBC 노동조합은 김재철 사장에게 9월 26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가겠다고 통보. 하지만 파업 돌입 직전 극적으로 <단체협약>이 타결되고 MBC 노동조합은 총파업을 철회.
새로 체결된 단체협약에서 <공정방송을 위한 제도적 장치>는 과거보다 더 강화된 형태로 보강됨. <보직변경과 문책> 관련해서 조합의 요구에 사장이 더 성실하게 의무적으로 응하게끔 조항을 더 강화시킴.

 

11월  의도적인 <단체협약> 무시와 심각한 편파 보도
- 11월 3일 새로 체결된 단체협약에 입각해 첫 <공정방송협의회>가 열림
안건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관련 뉴스 편파 보도. 김재철 사장은 뉴스 보도가 편파적이었음을 인정하고 추후 재발시 사장 본인과 보도본부장, 편성제작본부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날 것이라는 폭탄발언까지 함.

- 뉴스 보도 편파 사례
당시 MB 내곡동 사저 문제가 불거졌지만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데스크의 판단으로 의혹 제기는 없이 단순히 청와대 해명을 전하는 데만 급급. 심지어 기자가 작성해서 송출한 기사의 중요 문구를 데스크가 임의로 삭제하는 일도 자행. 여당 후보인 나경원 후보에 비해 3배 가까이 야당 후보인 박원순 후보의 약점만을 지적하는 보도가 나감. 객관적인 양에 있어서 편파 보도임이 확실.

- 공정방송협의회 개최 거부
하지만 11월 3일 열렸던 공정방송협의회가 처음이자 마지막 공정방송협의회였음. 이후 김재철 사장은 조합의 줄기찬 공정방송협의회 개최요구를 거부. 한미FTA 편파보도, MB 도곡동 사저 보도 누락, 김문수 지사 119 통화사건 보도 누락 등 숱한 축소 · 누락 · 왜곡 보도에 대해 <공정방송협의회> 개최와 담당 국장 문책을 노동조합이 요구했지만 김재철 사장은 일절 응하지 않았음.

- 뉴스데스크 편파 보도
작년 11월 한미 FTA 관련 보도는 우리 기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줬음. 날치기 처리로 부정적인 여론이 비등했지만 우리 뉴스에서는 한미 FTA의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만 보도했고, 반대집회와 시위는 철저히 묵살. 결국 MBC 로고를 붙이고 취재하던 영상취재기자들이 현장에서 시민들에게 욕설을 당하고 쫓겨나는 사태까지 벌어짐.
아래 내용은 사내 공용 게시판에 올려진 한 기자의 글.

 실제 현장 분위기는 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습니다.
그제 취재한 선후배들이 가져갔던 카메라가 밀쳐지고 트라이포드(삼각대)는 걷어차였습니다. 이제 우리 몸이 걷어차이고 맞는 일만 남았습니다.
어젯밤에는 우리 회사 로고가 새겨진 ENG카메라를 들고는 도저히 취재가 불가능하여 아예 로고 없는 6mm 소형캠코더를 들고 가서야 근접 취재가 가능했습니다.
회사 차량은 시민들의 항의 때문에 근처에 못 대고 (차량기사)형님께 아예 시청에 숨어계시라 했고요....
진심으로 보도본부장님, 보도국장님,  보도국 보직부장님들께 여쭙고 싶습니다.
지금 현장에서 후배들이 어떻게 취재하고 있는지, 알고 계신 겁니까?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 하시는 겁니까? 보수단체 집회에서도 천대받고, 진보단체 집회에서도 쫓겨나니 이제 우리는 어느 한쪽에도 편향되지 않은 공정한 언론사로 거듭난 것입니까?

 

하지만 위 글은 게시판에 올려지자 마자 보도국장의 지시로 삭제 조치.

 MBC 노동조합이 집계한 김재철 사장 체제하에서 불공정 보도 사례는 52건. 보도부문 불공정 사례 36건, 시사교양 불공정 사례 10건, 라디오 프로그램 불공정 사례 6건.

 

2010년

4월  김재철 사장 퇴진 및 MBC 장악 진상 규명을 위한 총파업
4월  - 39일 파업, 이근행 위원장 해고 및 17명의 노조간부 징계
4월  전국적으로 80여명에 가까운 조합 집행부 징계


8월  PD수첩 4대강편 불방 사태


9월  보도 시사프로그램 <후 플러스>와 국제 시사프로그램 <W> 폐지
9월  <주말 뉴스데스크> 저녁 8시대로 시간 이동 

 

2009년

2월  8대 위원장과 임원 선거 개표
2월  언론악법 저지 언론노조 파업(2차)
2월  - 미디어법 제정 반대


3월  8대 집행부 출범(이근행 위원장, 황성철 수석부위원장)


7월  언론악법 저지 언론노조 파업(3차)
7월  - 미디어법 직권상정 반대 총파업  

 

2008년

2월  방통위 설립법 규탄 

 

6월  최시중 방통위원장 규탄 농성  

 

7월  PD수첩 표적 수사 규탄
7월  광우병 관련 <PD수첩>제작진 사수투쟁 (사수대 결성, 로비 농성)   

 

9월  민영미디어렙 반대  

 

10월  언론악법저지 철야농성  

 

12월  언론악법 저지 언론노조 파업(1차)
12월  - 미디어법 제정 반대 

 

2007년

2월  7대 위원장과 임원 선거
2월  (박성제 위원장, 이영훈 수석부위원장 당선)   

 

3월  한미FTA 저지! 언론 공공성 사수! 투쟁  

 

5월  경남4사 광역화 논의 

 

9월  방송통신위원회 설립 촉구 운동 

 

10월  언론관계법 개정 촉구 운동 

 

11월  한나라당 언론탄압 중단 촉구 운동 

 

2006년

3월  방송위원회, 지역 지상파DMB의 방송권역을
3월  ‘비수도권 단일권역’으로 확정 발표.

 

4월  지역 지상파DMB 단일권역 철회를 위한 투쟁 

 

6월  한미FTA 저지 언론노조 총파업

 

10월  단일노조 창립 10주년 기념행사.  

 

11월  <PD수첩>, 2006 민주언론상 수상

 

2005년

3월  제6기 집행부 출범
3월  (김상훈 위원장, 전성진 수석부위원장)
3월  최문순 사장 취임         
3월  위성DMB 지상파 재전송 저지 투쟁

2003년

3월  DTV전송방식 변경 및 외주 관련 투쟁 

 

12월  DTV투쟁 위한 집행부 철야농성 

 

1996년

3월  전면파업 (사장 퇴진 요구)
- 위원장 해고․주요 조합간부 정직 
- 강성구 사장 사퇴 (96년 6월)

 

10월 10일 전국문화방송노동조합 설립 

- 전국 20개 단위노조 조건부해산 거쳐 창립총회 개최

- 조합원수 2천3백명의 소산별 노조 건설

- 위원장 정찬형(서울지부), 부위원장 최윤태(춘천지부)  

 

11월 9일 단일노조 설립신고서 반려 

- 설립총회 다시 개최(22일)

- 전국문화방송노동조합 합법성 쟁취(12월6일 신고필증) 

 

12월 4일 방송4사 방송악법저지 총파업 찬반투표 

- 82%투표, 80%찬성으로 방송법 개악시 즉각 총파업 선언

- 국회 제도개선특위 방송법 협상시한 익년 2월까지로 연장  

 

12월 30일 날치기 노동법 철폐 투쟁

- 노동악법 분쇄를 위한 전국MBC노조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

- 익년 1월 4일까지 전조합원 총투표(88.4%투표, 79.4%찬성)

- 1월 7일 무기한 전면 총파업 돌입

- 1월 16일 방송/신문/통신 25개 언론사 총파업 결의대회 참가

- 1월 17일 업무복귀(토요 장외투쟁, 업무현장투쟁으로 전환) 

1997년

1월  노동악법 철폐 파업(13일간)

 

4월 22일 

전국문화방송노동조합 제 2대 집행부 출범(현 집행부)
- 서울지부 제 9기 집행부 겸직

 

9월 10일  97 임단협 공통조항 완전 타결

1998년

1월  서울노사, 경영혁신반 / IMF비상대책노사협의회 구성 합의


5월  지방사 광역화 논의를 위한 ‘관계회사 개편 추진반’발족 

1999년

2월  방송개혁을 위한 전국문화방송노동조합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2월  25일~26일 제 3기 위원장단 선거


7월  전면파업 (민주적 방송법 쟁취)


8월  위원장 및 방노련 사무처장(마산지부) 구속


10월  구속동지 집행유예로 석방


12월  통합방송법 국회 통과 

2000년

1월  통합 방송법 공포 

3월  방송법 시행 

11월  전국언론노동조합으로의 산별 전환 조합원 전체 투표(가결)
11월  전국언론노동조합 출범 (초대 최문순 위원장, MBC) 

2001년

2월  노성대 사장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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